에겐남, 테토녀, 그리고 사람을 나누고 싶은 사회

왜 그렇게 나누고 싶어할까?

by 잡생각 수집가

MBTI가 한물간 지금, 사람들은 새로운 분류 놀이를 찾았다.

이번엔 호르몬이다.

에스트로겐 남자, 테스토스테론 여자.

줄여서 에겐남, 테토녀.


누군가는 말한다.

“요즘 남자들 너무 감성적이야, 에겐남이야 완전.”

“쟤는 테토녀야, 맨날 승부욕에 불타잖아.”

혈액형, 별자리, MBTI… 그리고 이제는 호르몬까지.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나누고 싶어하는 걸까?




사람은 복잡하다.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태도는 상황마다 다르다.

그 복잡함이 버거울 때, 우리는 ‘이해’를 포기하고 ‘분류’를 선택한다.

“쟤는 T라서 그래.”

“나는 INFP니까 무기력한 거지…”

“그 애는 테토남이라 표현이 좀 쌔.”

이해보다 분류가 쉬운 사회.

분류는 패턴이고, 패턴은 예측을 만든다.

예측이 가능하면 우리는 안심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이해일까?


누군가를 ‘에겐남’이라 부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카테고리”가 된다.

그 카테고리에는

"감성적", "눈물 많음", "공감 잘함" 같은 설명이 달려 있고,

그 사람은 그 프레임 안에서 소비된다.

문제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감정과 맥락을 갖고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


이 모든 분류의 밑바닥에는 불안이 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람조차 예측 불가능하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나눈다.

“이쪽은 감성파, 저쪽은 승부욕파.”

“나는 그쪽 사람들과는 안 맞아.”

“나는 이쪽에 속하니까, 이렇게 살아야 해.”

분류는 안심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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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나누는 건 때론 필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분류는, 도구일 뿐이다.

사람은 그 도구보다 더 복잡하고,

하루하루 바뀌는 존재라는 걸.

나는 테토녀일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에겐남보다 더 감성적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너무 빠르게, 너무 쉽게

누군가를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나고,

너도 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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