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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Oct 15. 2021

우울한 사람들

아직 삼십 대인데 이상하게 주변에 일찍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다. 특히 힘든 일을 겪고 우울증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여럿 된다.



2011년부터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느껴지고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면서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우울감이 몇 년간 지속되던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사람들이 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마음속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현실 세계에서 겪는 극심한 고통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죽음, 여기서 내 생을 끝내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우울감으로 인한 자살을 선택하기 전에 나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함께 나눈 대화로 그들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네 편이라는 마음도 전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살이라는 선택을 앞둔 사람 앞에서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고, 자살이라는 선택에 불을 붙이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내가 오히려 불을 붙였던 것 같은 사람도 있어, 그의 선택에 내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만 같은 순간도 있었다.



우울이란 녀석은 처음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잡아먹어버리더니,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도록 만들었다. 태생부터 쓸모없는 인간, 어느 것 하나 잘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인간, 존재만으로도 사회악이 되고,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인간 등등..


우울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차 나를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이 길 끝에 낭떠러지가 있는지도 모른 채 가고 있었다.


우울감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었던 엄마와 최대한 부딪치지 않고 싶었다. 엄마가 잠든 이후에 집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저녁 술 마실 대상을 찾아 술을 마셨다. 어쩌다 함께 술 마실 사람을 못 찾는 날이면 늦게까지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느지막이 맥주 한두 캔을 사서 집으로 갔다.



그 와중에 사람들과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 SNS에 사진과 글을 게시했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눌러주는 사람들의 공감과 댓글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했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르자,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고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내게 일어났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불안해 보이는 나를 불러 우울이란 감정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진실을 하나둘씩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S는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하나의 진실을 꺼내어 바로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단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다

늘 행복하다 말했지만, 진실로 행복한 적이 없었고, 자유를 외쳤지만,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항상 행복한 척, 자유로운 척 해왔다. 보여주기 위한 행복과 자유로움은 스스로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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