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삼십 대인데 이상하게 주변에 일찍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다. 특히 힘든 일을 겪고 우울증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여럿 된다.
2011년부터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느껴지고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면서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우울감이 몇 년간 지속되던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사람들이 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마음속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현실 세계에서 겪는 극심한 고통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죽음, 여기서 내 생을 끝내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우울감으로 인한 자살을 선택하기 전에 나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함께 나눈 대화로 그들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네 편이라는 마음도 전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살이라는 선택을 앞둔 사람 앞에서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고, 자살이라는 선택에 불을 붙이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내가 오히려 불을 붙였던 것 같은 사람도 있어, 그의 선택에 내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만 같은 순간도 있었다.
우울이란 녀석은 처음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잡아먹어버리더니,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도록 만들었다. 태생부터 쓸모없는 인간, 어느 것 하나 잘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인간, 존재만으로도 사회악이 되고,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인간 등등..
우울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차 나를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이 길 끝에 낭떠러지가 있는지도 모른 채 가고 있었다.
우울감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었던 엄마와 최대한 부딪치지 않고 싶었다. 엄마가 잠든 이후에 집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저녁 술 마실 대상을 찾아 술을 마셨다. 어쩌다 함께 술 마실 사람을 못 찾는 날이면 늦게까지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느지막이 맥주 한두 캔을 사서 집으로 갔다.
그 와중에 사람들과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 SNS에 사진과 글을 게시했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눌러주는 사람들의 공감과 댓글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했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르자,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고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내게 일어났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불안해 보이는 나를 불러 우울이란 감정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진실을 하나둘씩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S는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하나의 진실을 꺼내어 바로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단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다
늘 행복하다 말했지만, 진실로 행복한 적이 없었고, 자유를 외쳤지만,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항상 행복한 척, 자유로운 척 해왔다. 보여주기 위한 행복과 자유로움은 스스로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