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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을 위한 가장 따뜻한 처방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세상의 가슴 가운데 시리지 않은 가슴 있더냐

모두 빈 가슴

안아주어라

안기고 싶을 때 네가 먼저 안아라

너를 안는 건

네 속의 나를 안는 것


이병철 시인의 시〈안기기, 안아주기〉의 첫머리입니다. 시인은 세상사람 누구나 시린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먼저 안아주고, 먼저 안기는 것. 시인이 말하듯 누군가를 안아주는 것은 곧 내 안의 나를 안아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 속에서 포옹의 대상은 겁먹고 수줍은 아이, 허기져 외로운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에 자리한 상처 입은 나이기도 합니다. 가슴을 열고, 심장을 포개어 그 아이를 안아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됩니다.


그림책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속 주인공 곰은 포옹의 힘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곰은 무엇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안아주는 걸 좋아합니다. 집에 있는 의자와 소파까지도 포옹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곰은 슬퍼하는 동물들을 만납니다. 처음엔 당황하던 동물들도 곰의 부드러운 포옹을 받자 울음을 멈추고, 투덜거리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납니다. 난폭하던 동물도 차분해지고, 마음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집니다.

곰이 특별한 말을 건넨 것도, 놀라운 선물을 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가가 안아준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행동이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고, 굳어 있던 마음을 녹였습니다. 포옹이 가진 치유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포옹을 뜻하는 영어 단어 ‘허그(Hug)’의 어원은 고대 노르웨이어 ‘Hugga’라고 합니다. ‘위로하다,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지요. 오래전 사람들도 포옹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상처를 달래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포옹은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심장 건강과 면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품에 안기는 순간, 우리는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고, 마음속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하루에 네 번 포옹하면 생존할 수 있고, 여덟 번 포옹하면 건강해지고, 열두 번 포옹하면 성장이 가능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다시 말합니다.


포용이란 포옹이다

닭이 알을 품듯

다만 가슴을 열어 그렇게 품어 안는 것


포옹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경계를 허무는 행위입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울타리를 녹이고, 옳고 그름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가슴에 가슴을 맞대고, 심장에 심장을 포갤 때 우리는 더 이상 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경계로 가득합니다. 학교에서는 구분을 잘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사회는 안과 밖을 나누며 타자를 만듭니다. 낯선 이는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불안을 낳으며, 불안은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갈등은 싸움터가 되고, 우리는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문제 또한 그 뿌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분리’에서 비롯된 상처이지요.

진정한 교감은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아픈 아이를 품에 안아 재우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약효가 나타나기 전까지 부모는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체온으로 고통을 달래줍니다. 약이 아니라 포옹이 먼저 아이를 진정시킵니다. 치유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저 역시 일상에서 이런 경험을 종종 합니다. 지쳐 돌아온 저녁, 아무 말 없이 안아준 가족의 포옹 한 번이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와 불안을 씻어낸 적이 있습니다. 따뜻한 품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은 금세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인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또 말합니다.


저 간절한 눈동자

묻어둔 저 그리움

가슴으로 품어 환히 꽃 피우는 것


서로를 안아주는 순간, 간절함과 그리움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꽃이 됩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시리고 외롭다면 가까운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보세요.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잠시 품에 안기면 됩니다. 그 단순한 행동이 당신과 상대 모두를 치유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시인의 말처럼, 먼저 안아주고 먼저 안기기를 선택해 보면 어떨까요. 가슴에 가슴을 맞대는 그 순간, 당신의 마음에도 환한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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