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면 봄이가 쪼르르 달려왔기 때문이다. 3년 전, 아직도 생생하다. 봄이 와 산책을 나간 날이다. 봄이 와 신나게 놀고 있을 때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끌끌, 저게 뭐가 예쁘다고"라고 하면서 우릴 흉봤다. 그리고 봄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순간 너무 화가 났던 나는 봄이에게 속삭였다. 귓속말로. "봄이야, 가서 물어버려!" 봄이가 내 말을 잘 들어서 가져다 달라는 걸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설마. 이것까지 들을까. 순간,"왈왈왈"봄이가 사납게 짖어대더니 아저씨의 다리를 물었다.
웬일이지?
봄이 와 함께한 2년 반 동안 날 한 번도 물지 않더니. 아저씨의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13살의 어린 나는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바쁜 부모님 대신 날 돌봐주는 나와 6살 차이 나는 언니,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언니, 수의사가 꿈인 우리 언니. 항상 다정했던 언니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드문 일이다. "너 밖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 경찰 아저씨가 전화가 왔단다. 강아지 데리고 당장 경찰서 오라고. 나와 우리 언니는 경찰서로 갔다. 그곳에는 그 아저씨도 있었다. 경찰이 우리 언니에게 자초지총 설명을 했다. 내 무릎에 앉은 봄이는 불안한지 계속 다리를 핥았다. 나도 불안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그런데 딱 한 소리.
내 귀에 영영 박힌 한 소리. 안 락 사..
법으로 사람을 심하게 문 개는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1주일 후 우리는 봄이를 데리고 경찰과 함께 동물 병원으로 갔다. 봄이가 안락사를 당하는 날이다. 나는 가는 내내 봄이를 붙잡고 울었다. "2020 4월 21일 1시 26분 봄이 님 사망하였습니다." 순간 난 봄이를 따라가고 싶었다. 봄이를 위해 절대 울지 않고 당당하게 살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는 건 왜일까.
멍 때리고 있던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언니가 나한테 하는 말."수현아, 윤수현!! 봄이 마지막 인사하러 가야지. 봄이 장례식 가자." 우리 언니 학교에서 조퇴한 것 같았다. 단정한 교복에 써진 이름. '율이 현' 난 빼어날 수에다가 나타낼 현 해서 수현인데 언닌 이로울 이 에다가 나타낼 현 해서 이현.... 우리 봄이는.. 봄에 태어나서 봄인데..... 강한 언니도 봄이 죽는 건 견디기 힘든 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난 울면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 "언니 엄마한테는 말.. 했어??" "응.." 아, 그렇구나. 엄마도 다 알구나. 저녁에 아빠와 엄마가 오셨다.
하지만 난 혼나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를 받았지. 봄이 죽어서 속상하겠다고. 그렇게 가족들한테 잊힌 봄이. 나와 언니한테는 아직 남아있는 봄이. 내 가슴 한 편에 죄책감으로 남아있는 봄이. 난 괜히 나 때문에 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 같아 항상 미안했다. 봄이가 가지 3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봄이 다가올 때면 항상 짜증이 많아졌다. 우울해서 그럴까 죄책감 때문에 그럴까 봄이가 생각나서 그럴까.
나도 이제 중 3이다.
잊힐 만도 한데 봄이는 잊히지 않았다. 내가 물라고 봄이에게 시킨 건 아직 아무도 몰랐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준다고 소문난 언니는 이제 22살, 어른이다. 나의 부모님 보다 나와 더 가까이했던 언니. 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든다고 항상 인기 많았던 우리 언니. 예쁘다고 인기 많았던 울 언니. 우리 언니는 이제 대학교에 갔다. 언니의 바람대로 수의학과에. 언니는 밤에, 적어도 9시면 들어왔다. 내가 언니에게 말하기로 결심한 그날, 언니는 평소보다 늦는 10시에 들어왔다.
"언니 할 이야기가 있어."
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언니와 나만 집에 있었다. 변호사인 엄마와 아빠 때문에. 엄마 아빠가 해외출장에 가서. 어차피 잘 됐다. 나와 평생 거리를 둔 엄마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니까. 1년에 많으면 5번밖에 못 봤으니까. 덕분에 우린 부자였지만 난 돈 필요 없이 엄마만 있으면 되니까.라는 초 4의 소원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 얘기가 뭔데?" 언니가 말했다.
" "언니... 있잖아. 봄이가 아저씨 물었을 때, 아저씨가 봄이한테 막 뭐라 하고 발길질해서... 그래서 내가 봄이한테 아저씨 물라고 귓속말로 소곤거렸어. 미안해," 여기서 왜 미안해가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있잖아," 언니가 말했다. "너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에.. 엄마가 너 생일선물로 봄이 준거래." 언니 말에 따르면, 엄마가 나 외롭지 않게 봄이를 데려온 것이라 했다. 의외이다.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봄이의 생일이 4월 21일이었다. 봄이는... 생일이 기일과 겹쳐진 것이었다. 봄이가 죽었을 때는 봄이 나이 고작 2살 반..
"운이 현!! 윤수현!! 엄마 아빠 갔다 올게" "오늘은 언제 와?" "한, 일주일 뒤에?? 금방 올게. 사랑해 이쁜 딸" 학교는 방학이었다. 이때쯤 봄이, 언니랑 공원에서 벚꽃 싸움 (꽃잎 던지면서 노는 게임) 했을 텐데. 일주일 후 방학이 끝났다. 몸이 약한 나는 봄에 항상 감기가 걸렸다.
난 언니에게 지금부터 계속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 언니는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봄이 죽었을 때만 빼고(그때는 언니의 시험 기간이었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오전에 언니와 공부를 했다. 언니가 내 공부 때문에 밤에 9시에 들어오던 언니는 12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22살인 언니가 아직도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건 드문 일이다. 토요일, 사촌 언니가 온다고 했다. 엄마와 4살 차이 나는 이모는 항상 우리 집에 오실 때 이런 말을 하신다. "우리 가은이가 벌써 45살이네" 사촌 언니는 우리 언니보다 나이가 많은 28살이다. 언니가 결혼해서 난 16살에 이모가 되었다. 4살짜리 아기가 나한테 언니라고 하지 않고 이모라고 하니까 음.. 기분이 이상하다.
이틀 후 언니가 집에 갔다. 난 이모와 언니를 배웅해 주고 집에 들어왔는데 눈이 저절로 발밑으로 갔다. 내 발밑에서 항상 날 반겨주고 핥아주던 봄이. 그런 봄이가 이제 없다. 어, 그런데 진짜로 누가 내 발을 핥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니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내 발밑엔 봄이 와 똑같이 생긴 얼룩무늬 강아지가 있었다. "네가 봄이를 잃고 너무 힘들어해서 데려왔어. 이름은.. 사계절 두 번째인 봄 다음인.. 여름이야!" 언니가 말했다. 나는 "그럼 여름이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다음 강아지는 가을이겠네"라고 말하며 웃었다. 여름이가 있어서 참 좋았다. 여름이가 봄이를 대신해주겠지만, 그렇다고 봄이를 잊진 않을것이다. 절대로.
2021 이주홍어린이문학관 버금상
엄마의 인스타그램을 따라하는 아이
<엄마의 에필로그>
"2021년 1월이 되어 12살이 된 딸이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아무 곳도 가지 못했던 그 때, 새로운 취미 생활이 엄마로썬 못내 반가웠다.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쓴 아이..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사랑하는 봄이를 잃었던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을 아이의 마음이, 오랜 시간 혼자서 삼켜냈을 마음이 느껴져 못내 마음이 아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