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Sep 01. 2024

1. 일상생활이 무너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눈을 떴을 때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똑같은 원룸 안. 곳곳에 입었던 옷 들이 너부러져 있고, 치우지 않은 쓰레기에서 냄새까지 올라오고 있다. 다행히 초파리는 아직 생기지 않은 듯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행한다.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소변을 본다. 변기에서는 물이 새고 있다. 몇 달이 지난 것 같은데 집주인에게 연락할 여력이 없다. 뭐 물이 좀 세는 것이 별거 인가?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잘 나간다고 생각되던 시절. 조직에서 인정받으며 젊은 나이에 보직을 받았다. 최연소라는 그 타이틀이 나는 꽤 자랑스러웠다. 나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같이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부하직원 M이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M의 잦은 지각과 갑작스러운 연차 사용에 불만을 품고 있을 때였다. M은 나에게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나는 꼰대처럼 반응했다. 어려울 땐 햇빛을 쐐보면 좋다고 되지도 않은 조언을 했다. 그리곤 요즘 친구들은 마음이 너무 여리다고 생각했다. 잠을 못 잔다는 M을 보며, 막노동을 하면 아무리 걱정이 많아도 밤에 잠을 잘 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삶이 편하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고 봤다. M은 곧 병가와 질병휴직을 연속을 쓰고 우리 부서를 떠났다. 

 

  그 증상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점점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있다. 8층이었던 나의 원룸 창가에서 고양이가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회사에 늦게 출근했다. 그리고 부족한 시간은 외출을 썼다. 행정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겠으나,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못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 둘 일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잦은 실수가 생겨났다.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느라 아무것도 할 수없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부서장님이 나를 불렀다. 다른 부서로 전출할 것을 권했다. 위에서 결정된 일이라 했다. 나는 감사하는 말을 남기고, 그 주에 바로 부서를 옮겼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 발령받은 부서에서의 적응은 더욱 힘들었다.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냥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일생 생활이 무너지는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환경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결국 정신건강 클리닉을 받기로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질 수 없기에 마지막 용기를 냈다.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가 강제적인 힘에 의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