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통제할 수 없을 때
회사 안은 물속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소진되는 그런 물속.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고 하루종일 혼자 있지만 계속 발차기를 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물속. 누구도 힘들어 한다고 손을 내밀어 주지 않고, 혼자서 계속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물속에서 발차기를 멈추는 순간 저 물 밑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는 숨을 쉴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이 계속될 때 불안 일기를 쓰기로 했다.
불안 일기는 정신건강 클리닉의 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하루에 불안한 일을 글로 정리하는 간단한 작업이다. 마치 숙제와 같다. 하나 나는 숙제를 좋아한다. 몸에 밴 성실성으로 불안의 순간이 찾아오면 바로 불안일기를 작성했다. 나에게 달리 이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당시에 없었기에 이 행위에 몰두했다. 하루에 3개를 작성했던 날도 있고, 하나도 작성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불안 일기를 작성하면서 나의 불안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마주 할 수 있었고, 그 실체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다는 것에 또 놀랐다. 마치 불안은 안개 같아서 그 속에 있으면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것 같지만, 그 안개가 걷히면 실체가 없는 허상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기록의 장점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에 있다.
20XX. 3. 10. 맑음
- 불안 정도 : 70점
- 상황 : 아침에 출근을 했다. 용기를 내어 맞은편에 앉은 동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내가 또 무언가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혹시 밤사이 또 나에 대한 어떤 안 좋은 소문을 들은 것인가? 이상한 생각이 든다. 빨리 내 자리에 와 앉았다.
- 신체 반응 : 머리가 막막해진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 재 해석(나중에 확인 한 사실) : 그 사람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어서 내가 인사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나중에는 더 크게 인사해야지. 그리고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지도 않을 거야
나는 계속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행위가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안 일기를 쓰고 그 상황을 다시 꼽씹어 본다. 최대한 객관하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상황에서 빠져나온다.
종종 거울을 볼 때 내 속의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의 형태는 어느 때는 '양의 모습'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염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는 분명 내 안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실체가 되어 나를 점령할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게 된다. 나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이 무척 두렵다. 그것은 실체가 있고, 내가 두려워할수록 점점 더 나를 사로잡아간다. 내가 그것에 의해 전부의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길을 내 상황을 계속 기록해 두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