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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뇌- 말 이전의 범주화

규정된 존재들 3편 1장

by Mind Thinker



인간은 누군가를 ‘타자’로 인식할 때,

단순히 언어로만 구분하지 않는다.

타자는 언어로만 정의하거나 경계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뇌는 감각 이전에 신경적으로 반응하고,

말 이전에 인지적으로 범주화하며,

자기 인식 이전부터 타인을 특정한 범주안에 자동으로 배치한다.


인간은 타인을 바라보기 전부터,

이미 그들을 '무엇인가'로 받아들이는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였다.


<규정된 존재들> 2편 3장에서 우리는

문명과 사회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타자'를 외부에 두고 정의해 왔음을 살펴보았다.


고대의 종교는 이방인을 악마화했고,

제국은 문화적 외부자들에게 동물의 형상을 입혔으며,

제도는 낯선 존재를 ‘우리’의 질서를 위협하는 이상자로 이름 지었다.

이는 하나의 문화적 기획이자,

타자화를 정당화하는 권력 담론의 구조였다.


그러나 이 구조는 단지 외부에서만 작동하는 논리가 아니었다.

사회가 만든 언어적 구획은 개인의 뇌 회로 안으로 흘러들어가,

자율적으로 사고한다고 믿는 개인의 신경 체계 속에 내면화된다.



인간은 이제 외부 환경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와 마주한다.


타자화는 단지 제도적 훈련이나 문화적 편향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뇌가 세상을 감각하고 분류하는 방식 그 자체에 스며 있다.

사회는 규정을 언어로 훈련하고,

교육은 그것을 반복시키며,

뇌는 그 반복된 패턴을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차별과 인식의 고정은 단지 생각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된 언어와 경험이 뇌 안에 자리 잡으며

자동으로 작동하게 된 하나의 인식 회로인 셈이다.


뇌는 단순한 생리 조절 기관이 아니다.

심장 박동, 호흡, 체온처럼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넘어,

뇌는 생존을 위해 위험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며,

세상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즉, 새로운 자극을 느낀 후 사고하기보다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규정의 시작이다.


타자는 낯설기 때문에 이방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뇌가 그를 낯설게 인식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에 이방인이 된다.

이것이 ‘타자화의 신경적 내부화’다.


인간이 특정 인물, 집단, 외형, 언어, 행동양식에 불편함이나 거리감을 느낄 때,

그것은 반드시 도덕적 실패나 의식적 혐오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뇌가 예측할 수 없는 정보에 대해 자동으로 생성하는 경계 반응이며,

그 반응은 감각 이전, 사고 이전, 말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규정은 더 이상 외부로부터 부여된 이름만이 아니다.

규정은 뇌 안에서 반복되고 강화된 예측의 경로,

생존을 위한 해석의 회로,

그리고 감정을 구성하는 판단의 패턴으로 작동한다.

말하자면, 타자를 만들어내는 언어는 사회가 준 것이지만,

그 언어를 본능처럼 자동 실행하는 기계는 뇌인 것이다.


이것이 규정의 내부화이며,

인간이 규정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조건이기도 하다.


사회가 한 번 만든 말은 뇌 안에 들어와 기억되고,

반복되어, 생존을 위한 판단 체계가 된다.


결국 인간은 사회가 만든 언어를 통해 타자를 배웠고,
그 언어는 뇌 속에 각인되어 반복되며 자동화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반응은 사회가 주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뇌가 이미 그 언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간은 타자를 언어로 이해하기 전에,
이미 뇌 안에서 범주화하고 해석하고 경계하는 회로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는 그 회로를 훈련시켰고, 교육은 그것을 반복시켰으며,
이제 뇌는 타자를 규정하는 가장 정교한 기계로 작동하게 되었다.

규정은 말 이전에, 신경적 예측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곧 인간 존재의 구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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