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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자동 생존 시스템

규정된 존재들 3편 2장

by Mind Thinker


뇌는 본래 오래 고민하거나 질문하도록 설계된 기관이 아니다.

뇌는 질문을 생략하고 즉답을 구성하는 기관이다.

대상에 대해 깊이 사유하기 이전에, 뇌는 가능한 한 빠르게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단정 짓는다.

그 단정은 인식이 아니라 예측을 위한 정리, 즉 생존을 위한 정리다.


뇌는 인간 생체 에너지 소비량의 약 20% 이상을 사용한다. 이 고비용 기관은 언제나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화해 왔다. 새로운 자극, 낯선 얼굴, 설명할 수 없는 행동, 경험하지 않은 감정은 뇌에게 ‘계산되지 않은 위험’이며, 이 위험은 곧 에너지 소비와 생존 부담을 의미한다.


그래서 뇌는 질문 대신 이름을 붙인다.

이름은 해석이 아니라 회피의 도구,

판단이 아니라 분류의 지름길이다.

그 분류는 복잡한 사유를 생략하고,

직관처럼 느껴지는 자동화된 신경 반응을 유도한다.

인간은 누군가를 마주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시간을 두고 느끼기 이전에

'화난 얼굴, 위험한 표정, 불편한 스타일, 껄끄러운 관계... '로 판단해 버린다.


이러한 판단은 명확한 사유나 근거 없이 작동하지만, 그 속도는 빠르고 그 효과는 안정감을 준다. 뇌는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아는 것처럼 느끼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것이 범주화의 본질이다.

감각은 흐르고 있지만, 뇌는 그것을 끊어 읽고, 나누고, 정해진 틀 속에 넣는다.


이러한 범주화를 '프로토카테고리(protocategory)'라고 부른다.

이는 뇌가 새로운 자극을 만났을 때, 그것을 일일이 고유하게 분석하지 않고, 과거의 기억 속에 저장된 틀에 따라 즉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시간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생존의 기술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상을 하나의 고정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정리하는 신경적 규정 행위이기도 하다.

이때 뇌는 평균적으로 상대를 다섯 가지 분류하고 거의 동시에 판단한다.


성별 – 그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혹은 명확하지 않은가?

연령 – 그는 젊은가, 늙었는가, 아이인가?

인종/외형 – 나와 같은 피부색인가, 언어는 어떻게 들리는가?

감정 상태 – 표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화났는가, 기쁜가, 무표정한가?

위협 가능성 – 그 존재는 나에게 위험이 되는가, 도움이 되는가?


이 분류는 의식적 분석이 아니라, 뇌의 감각적 대응 매트릭스다. 즉, 보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렇게 보아왔던 방식으로 다시 느끼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가 들어오면 뇌는 곧바로 이 다섯 가지 범주를 기준으로 이해 가능한 프레임 안에 밀어 넣는다.


이는 대상을 개별적인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감정과 기억의 그림자를 덧씌우는 방식이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이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느낀다.


낯선 사람이 다가올 때, 인간은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기억 속 유사한 얼굴, 억양, 걸음걸이, 표정의 패턴 등을 재생해 낸다. 그 정보는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작동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 '불쾌감, 두려움, 경계심, 혹은 반가움'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현실감은 지금, 여기의 감각이 아니라, 과거에 반복되었던 구조의 재활용이다.


이 자동 반응

인간의 뇌가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하며 개발한 ‘낯섦에 대한 빠른 판단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야생에서 포식자를 구분하고,

독이 든 열매를 피하고,

적대적 무리를 구별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스템은

차별, 편견, 오해, 오인된 감정 반응의 신경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범주화가 뇌의 생존 전략이자 동시에 존재의 왜곡 구조라는 점이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뇌가 설정한 구조 안에서 대상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 정리는 언제나 과거에 배운 이름, 익숙한 분류, 반복된 판단 안에서 이루어진다.


대상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뇌는 이미 판단을 끝냈다.
인간의 뇌는 대상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무엇으로 그것을 환원해 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며,

규정이 외부의 언어를 넘어 뇌의 자동 반응으로 이식된 해석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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