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도 환영받는 나라
언젠가 토론토 시내에 있는 소방서 옆을 지날 때였다. 출동하는 차들만 보면 흥분 상태가 되는 우리 아이들은 밖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소방관들을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소방관들이 세상 친절하게 아이들을 환영하며 소방차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첫째는 쑥스러운지 얼른 내 뒤로 숨었지만, 자동차에 열광하는 아들은 냅다 아저씨의 손을 잡고 소방차에 뛰어올랐다. 각종 신기한 장비들에 눈이 휘둥그레진 꼬마가 귀여운지, 소방관 아저씨는 운전석에도 녀석을 앉혀 주었다. 헤어질 때 받은 소방서 스티커는 아들내미가 가장 아끼는 덤프트럭 장난감에 아직도 붙어 있다.
알고 보니 여기에선 아이들에게 소방차를 구경시켜 주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너무 바쁜 시간대만 아니라면 누구나 그 앞을 지나가다가 운 좋게 소방차를 구경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생전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므로.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환대하는 곳은 소방서뿐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 가면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일차 고비가 온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동안 지루해하지 않도록 놀 거리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많았다. 식탁에 깔아 둔 종이 매트에는 색칠 도안, 미로 찾기, 낱말 맞추기 등 간단한 활동지가 인쇄되어 있었고,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종업원이 아이들에게 크래용을 나누어 주었다.
길을 가다가 인사를 받는 것도 예사다. 누구든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해 준다. 정말 놀라운 건, "Food Donation" 팻말을 들고 동냥하는 홈리스들도 환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는 사실. 대체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반겨주는지 참, 고마웠다.
아이들을 환영한다는 건 엄마들을 환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환대를 한국에서 아예 경험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거기선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늘 죄스러운 마음이 깔려 있었다. 실제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우릴 보며 웃어줘도, 내 머릿속에는 맘충이니 금쪽이니 인터넷에 도배된 말들이 떠나질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겠다는 좋은 다짐 외에도, 혐오와 조롱을 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늘 공존했던 것 같다.
'내 새끼 내 눈에나 예쁘지. 남들 눈에 얼마나 미우면 더 이상 낳고 싶지도 않은 존재가 되었을까? 그러니 엄마 된 죄인으로서 환영까지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고 그저 맘충만 면해도 안심, 금쪽이만 면해도 감사해야지.'
이 가슴 아픈 생각을 당연하다 믿었던 것 같다. 애들이 오죽 밉게 굴었으면, 엄마들이 오죽 뻔뻔하게 굴었으면 이리되었을까 싶다가도, 그런 우리 사회는 왜 하고 많은 해결책 중에 혐오와 조롱을 선택했는지 야속하다. 그런 혐오와 조롱이 우리 각 사람과 사회 전체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원래부터 무서운 엄마였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지금부터 되바라지면 나중에 종잡을 수 없을까 봐 고삐를 단단히 죄어 왔다. 그러는 내 마음은 당연히 편하지 않다. 자식 혼내는 걸 즐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자식에게 환심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인간 만드는 것이니 이에 따른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고 오래전에 결론 내렸다. 굳은 결심으로 키워도 자식을 바로 키우기가 너무너무너무 힘들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허구한 날 실수하고 반성하고도 또 실수한다. 이런 내 모습에 자주 의기소침해진다.
여기서도 난 여전히 무서운 엄마다. 캐나다인들도 사람인데 아이를 환영하는 것이지 버르장머리 없는 걸 쌍수 들어 반길 리가 없을 테니, 알아서 눈치껏 처신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의 마음가짐과 다른 점이 있다. 거기선 욕먹지 않기 위해, 손가락질당하지 않기 위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여기선 나에게 보여준 환대에 화답하기 위해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하다. 후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요즘, 확실히 좀 덜 피로하고 좀 더 빨리 회복한다. 아무래도 불필요한 감정들이 치렁치렁 따라붙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실수해도 벌레라고 욕먹진 않을 테니, 그것도 퍽 안심이 된다. 아마 보통의 마음을 가진 다른 엄마들도 이웃의 호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