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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도 자꾸 쓰다 보면 언젠가 바닥나겠지.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하겠니.

by 누스

나는 이제 5년 차 엄마직 종사자이다. 회사로 치면 곧 대리 승진을 앞두고 있을 테니 어느 정도 실무자로서의 기반을 다졌다고 봐도 되겠다. 기간 자체가 길진 않았지만 흔히 빡세다고들 하는 연년생 프로젝트를 밀도 있게 진행해 오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명확하게 딱 세 글자이다.

떼. 쓰. 기


내가 제일 못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떼쓰는 거 참기


그렇다. 나는 아이들의 떼쓰기에 취약하다. 부모님 말씀에 예스걸이었던 K-장녀로서 부모님 말씀을 안 듣는 그노무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며(이해하고 싶지도 않으며), 또한 청각에 굉장히 민감한 예민러로서 떼쓰는 소리 자체를 듣고 있기도 너무 힘들다. 왜 이렇게 말 끝을 길게 늘이는지, 왜 했던 말을 계속하는지, 왜 안 되는 걸 달라고 하는지, 왜 말이 통하지 않는지, 왜 우는 소리로 말하는지, 왜 이렇게 목소리는 큰지, 왜 지치질 않는지, 왜. 왜. 왜.


지금 당장 짜장면을 만들어 줄 수는 없으니 식판에 덜어 놓은 된장국이나 먹으라는 말을 왜 듣지 않는지. 네가 원하는 그노무 트럭을 만들려면 이런 조악한 블록이나 만질 게 아니라 현기차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걸 왜 넌 모르는지. 내가 못 그린 게 아니라 네가 설명을 못해서 공주님 얼굴이 요따구로 그려졌다는 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지.


아마도 너희들 입장에선 엄마인 내가 박박 떼를 쓰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냥 떼쓰는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사람이 진짜 돌아버리겠는 건 이게 무수히도 "반복"된다는 점이다. 낙숫물이 댓돌 뚫는다고, 뗏숫물에 두개골이 뚫릴 것 같은 심정을 아시는지? 아이들을 사랑으로 수 만 번 가르치라지만, 막상 그 소음의 한가운데에 서있자면 이성적인 사고가 잘 안 된다. 물롤 알죠... 저도 진짜 잘하려고 매번 마음을 먹는데... 얘가 오전에만 엄마를 오백 번은 불렀다고요.


이번에도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너무 가혹했다.

1. 떼쓰기를 견디면서 사랑으로 잘 가르칠 건지

2. 떼쓰기를 견디면서 인간으로 잘 길러낼 건지

3. 떼쓰기를 견디면서 사람다워지길 기다릴 건지

4... 그만 쓰자. 마음 상하려고 한다.


인내는 디폴트라는 것을 인정하고부터 나는 떼쓰기를 참아내기 위해 별 짓을 다 해봤다.

- 징징거리는 소리에 관심 끄기(근데 잘 안 꺼진다).
- 화가 날 것 같으면 물 한 잔 마시기(물 마시자마자 또 화난다).
- 소리가 힘들면 휴지로 귀 막고 있어 보기(조금 낫긴 하는데 계속 이러고 있을 수가 없다).
- 힘이라도 세지면 잘 견뎌질까 싶어서 운동하기(운동 직후 30분 정도는 효과 만점).
- 방 문 닫고 울기(처량하다).
- 안 보이는 데서 소리 지르기(불쌍하다).
- 보이는 데서 소리 지르기(애가 불쌍하다).
- 모두의 기분 전환을 위해 신나는 음악 틀기(음악 소리도 시끄럽다).
- 유머러스하게 주의 환기 시키기(도저히 농담 따먹기 할 기분이 아니다).


모두 다 조금씩은 소용이 있었으나, 모두 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용해졌다. 그래도 효능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방법을 처방해서 돌려 막기 하다 보면 시간이 좀 흘러 있고 애가 좀 커 있긴 했다. 물론 한 번에 문제 행동 하나씩 목표를 정해서 훈육하는 건 꽤 효과적이었다. 그렇지만 매 순간 그렇게 각 잡고 훈육하며 사는 건 불가능하다. 엄마는 훈육 외에도 할 일이 아주 많으며, 아이들은 오만가지 것으로 다 떼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잡고 있지 않을 때에도 떼쓰기를 견디게 해 줄 어떠한 장치 내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엔 하다 하다 이런 생각까지 해봤다.


그래... 니들이 뭐 언제까지 떼쓰겠냐. 평생 이러겠냐.
자판기처럼 자꾸 뽑아 쓰다 보면 떼쓰기도 언젠가 동이 나겠지…


이게 좋은 아이디어인지 아니면 마침내 내가 돌아버린 건진 몰라도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한 사람 당 떼쓸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을 것이다! 물론 인당 천만 개 이상의 떼가 들어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 쓰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재고가 소진될 게 분명하다?! 그러니 떼쓰기가 반복되더라도 너무 절망하진 말아야겠다. 이것은 재고 소진으로 가는 길이니까, 암요 얼마든지 떼쓰세요. 어쨌든 엄마가 덜 지쳐야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또한 무용해지기 전까지는 유용하리라 믿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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