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을 극복하는 법
어렸을 때 난 많은 걸 귀찮아하곤 했다. 노트에 뭔가를 쓰다가 틀리면 그걸 지우는 게 귀찮아서 찍찍 그어 버렸고, 몇 줄을 쓰고 나면 글씨체가 괴발개발 되곤 했다. 어린 내 눈에는 노트 한 바닥을 정자체로 빼곡히 써 내려가는 친구들이 멋져 보였다. 나이를 제법 먹은 지금도 귀차니즘은 늘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억지로나마 훈련된 성실함으로 이제 청소기는 부지런히 돌리지만, 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우는 건 왜 이리 귀찮은지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겨우 한다.
가끔은 귀차니즘이 유용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성가시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줄일지 잔머리를 굴리다 보면 편하게 일할 방법을 찾기도 했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낸다는 게으른 천재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다만 그는 천재요 나는 천재가 아니기에, 내가 발견한 지름길은 그냥 막다른 골목이었을 뿐...
이런 나의 귀차니즘은 사실 게으름보다는 급한 성격 때문이라고 봐야 좀 더 정확하다. 하고 싶은 건 많지, 그런데 이걸 다 빨리 해내서 신속하게 결과물을 보고 싶지, 그래서 가운데에 놓인 지난한 절차는 모두 무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귀차니즘은 일상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서 그 틈으로 중요한 것들 줄줄 새어 나가게 만들었다. 귀찮아서 생략한 일들은 훗날 완성도, 성과, 실력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과거의 내가 미룬 일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미래의 나를 강타하기도 했다.
그나마 예전에는 혼자 손해 보면 될 일들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자 나의 귀차니즘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생명체가 둘이나 더 늘어났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의욕도 넘치는 우리 아이들은 요구가 많은 편이다. 하고 싶은 건 많으나 아직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종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게다가 성격이 급한 엄마와 엄마보다 조금 더 급한 아빠를 쏙 빼닮았기에, 우리 아이들 역시 급하다. 그러니 상상해 보라. 그들의 요구는 말 그대로 빗발친다.
물론 아이들의 청을 다 들어줄 수도, 다 들어줄 필요도 없다. 적절한 좌절은 인내심을 키운다고 하니 요구가 좌절되면 그런대로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적절한 좌절"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들, 가슴에 손을 한 번 얹어보세요. 솔. 직. 히. 교육적인 목적과는 별개로 그냥 귀찮아서 해주기 싫을 때도 많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고작 애 둘 키우는데 무슨 놈의 해줄 게 이리도 많은지 참. 어쩔 땐 별 게 다 성가시게 느껴져서 아이들의 필수적인 요구에도 과민반응하게 된다. 대체로 내 컨디션이 안 좋거나 바쁠 때. 즉 시간적, 체력적, 심리적 여유가 부족할 때 그렇게 된다. 한 번 귀찮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날의 결말은 둘 중 하나이다. 눈물 쏙 빠지게 혼내서 더 이상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귀찮음의 늪에서 빠져 나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아무래도 전자는 너무 치사하다. 너무 나쁜 부모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양심은 후자를 택하라고 말한다. 물론 자주 실패한다. 그래도 또 노력한다. 내가 저 어린애들보다는 나은 어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난 좋은 부모가 되는 주문 하나를 외워 본다.
수리수리 마수리 귀찮음아 썩 꺼지거라.
나 자신아, 귀찮음을 극복하고 일어나자. 애들 밥 차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