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내 안의 그릇에 많은 경험을 담아,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그 길에서 중독의 길과 독파민의 길은 한 끗 차이다.
학교 최고 인기 없는 장소인 도서관은 내가 교실보다 오래 있던 장소다.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무수한 책들이 나를 감싸 안는 느낌에 풍족하고 따듯한 기분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들락거리느라 바빴고 1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 야속했다. 점심시간까지도 밥을 제일 빨리 먹거나 제일 늦게 먹어 책 읽는 시간을 무조건 확보해 뒀다. 그렇게 친구들은 한창 수능 공부를 하느라 바쁠 때 나는 책만 읽었다.
모든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나는 책 편식이 심했다. 주로 읽는 건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 가끔 가다 소설책.
그러다 책 시야도, 세계도 넓어진 건 대학에 가기 위해 여러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한 뒤부터다. 생활기록부 독서기록을 정리하며 각 분야에서의 권 수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인문사회, 과학, 예술 부분을 월등히 높였다. 처음에는 진짜 힘들어 책 한 권을 일주일 내내 읽곤 했다. 그리고 꿈이었던 방송작가에 대한 열정을 보이기 위해 글쓰기 책도 많이 읽어 지식 쌓기를 위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처음엔 목표가 있던 책 읽기였을지 몰라도 내 세계를 확장하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반강압적인 상황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세계에 갇혔을 것이고 심하면 심했지 편식이 나아지진 않았을 거다.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갇힌다는 것은 조금 위험한 일인 것 같다. 그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책만을 읽을 때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그 세계 안에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불러도 모를 정도로 주변의 상황에 신경 쓰지 못했다. 당시에는 그 적막과 고요, 집중과 현존의 감각이 너무 좋아 택했던 것이겠지만.
여러 분야의 작품을 읽으면서는 솔직히 집중은 하나도 안 됐다. 설렁설렁 들여다보고 다른 일하다 펼쳐보고... 하지만 그러면서 생활에 적용해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다. 세상과 소통하며 책을 읽는 법을 알게 되고, 단순히 재미에 그쳤던 책 읽기에서 벗어나 내 안에 지식이 많이 쌓인 것이다. 그렇게 나의 그릇에 가득 찬 책이 후에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꿈꾸던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를 넓은 세계로 안내했다.
(2) 대학 면접, 현대문학 전공 교수님 앞에서 내가 읽은 시집 내용 '모르겠다' 시전
모르는 것 앞에서 한없이 낮아져라. 때로는 모르는 걸 모른다 말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망했어.'
가고 싶던 대학 면접을 보고 나와 기껏 응원하고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울며불며 한 첫마디. 그 이유는 이랬다.
완벽하게 준비한 면접에 옥에 티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독서기록 칸에 적힌 한 시집이었다.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당시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질문 예상도 답변도 준비를 못 했던 것. '설마 200권 가까이 되는 책 중에 그걸 고르겠어?'라는 안일한 자신감으로 당당히 면접장에 들어섰다.
역시나 슬픈 예감은 날 시험에 들게 했다. "이 책을 읽었네요? 무슨 내용이었어요?" 망했다.'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대답을 생각하려 했지만, 말 그대로 머릿속은 백지장. 다 포기한 채 "사실 몇 번은 반복해 읽어본 책이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책입니다. 아직까지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과에 들어온다면 이 책을 제대로 공부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돌아온 답은 "네 알겠습니다 하하하. 워낙 어려운 책이에요."
나중에서야 생각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참 괜찮은 답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 붙었으니 하는 말이겠지만. 만약 그때 내가 거짓말로 아는 체 떠들어댔다면? 상대는 이미 수를 다 파악했을 테니, 떨어졌을 거다. 그때 알았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마음먹기가 어렵지 이토록 뿌듯한 일이라는 것을.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직도 나의 무지가 무섭다. 누군가 내가 모르는 부분을 물어오면? 나는 대답해 줄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나의 모름을 인정하고 더 공부하고 반문해 상대에게 배울 것이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더 성장시킬 감사한 기회다. 매번 던져지는 모든 도전에 덤벼들고 대들지 말고 한없이 낮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