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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의 방향성을 찾아서

by 여윤


(1) 사랑을 하고 알아버린, 벗어나기 힘들었던 도파민


너무 강렬한 도파민은 나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도파민과 행복을 구별 못 하던 시절이 있다. 20살 청년이 사랑을 하고 나서부터. 많지 않은 연애였지만 지독하게도 강렬했다. 대학교 1학년, 전주 축구장에서만 만난 J는 '처음'사랑이었다.

축구 보러 다니는 게 제일 좋아하는 낙이었던 당시의 나는 축구도, 축구장도, 축구장에서 만난 그 사람도 낭만 그 자체였다. 정말 우연히, 별것도 아니었던 인연이 같이 축구를 보고 저녁을 먹고 다음을 기약하고 연인이 된다는 게 정말 짜릿했다. 그때 나는 순수에서 일탈의 길로 잠시 발을 들여놓았다. 다른 일상을 내팽개칠 정도로 가장 센 도파민이란 놈을 만나버린 것이다. '처음'연애는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너무나 허무하게 달아나버렸다.


어떤 도파민은 5년이나 갔다. 상대가 마치 나인 것처럼 잘 맞았고, 모든 게 재밌었고 모든 게 행복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사랑했다. 꽤나 오래가지 싶었다. 영원일 줄 알았다.

그 도파민이 떠나간 건 한순간이었다. 점점 안 맞는 부분이 생기고 서로 이해를 못 하고 싸움이 잦아졌다. '사실은 맞춰준 거였어'라는 말이 고마운 말인 줄 알았는데 슬픈 말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는 안 맞았던 거였다. 그 사랑은 내 인생 전부를 도파민으로 만들어놓고는 떠났다. 당연히 나를 잃었고, 뭘 해도 재밌지 않았고 세상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는 가수 박원의 말처럼 노력하는 사랑은 망한 사랑이라는 걸 굳게 믿게 된 나날들이었다. 그 어떤 것도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2) 어린 왕자가 울린 내 맘속 어린, 왕자. 건강한 도파민을 다시 찾아내다.


누구나 어린 왕자로 시작해, 어린 왕자로 살고, 어린 왕자로 끝난다.


인생에 연애가 들어오니 책은 사라지더라. 책도 만만치 않은 도파민인데 그 도파민의 방향이 사람으로 틀어지면서 책은 버림받았다.

책에서 다시 건강한 도파민을 만난 건 대학 교양 수업에서였다. 문학을 통해 삶의 철학을 얘기하는 수업이었다. 책을 선택해 보고서를 쓰는 활동에서, 나는 아마도 얇은 책이었기에 빨리 읽고 과제를 해버리고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택했다. 어린 왕자를 읽고, 분석하고, 내 생각을 투영하고 글로 풀어내면서 나의 섣부른 선택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감사했다. 나의 인생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 왕자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 얇은 책이 두꺼운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읽으면서 울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어린 왕자에 내 모습을 비추며 함께 성장했다. 어린 왕자는 때로는 미숙하고 어리석지만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정직하고 순수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려 한다. 여우와 꽃과 같은 인생의 스승과 같은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우리도 마음속에 어린 왕자 하나씩은 품고 산다. 그걸 잊고 사는 것일 뿐이지, 우리는 주변에서 여우나 꽃을 만나며 자신의 어린 왕자를 마주하고,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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