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 in

살고 싶게 만드는 게 있는 곳으로

by 여윤


(1) 시골살이 시작,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마음의 쪽빛 하나 열어두고 살자.


2n 년 간 살던 아파트를 벗어나 시골 주택으로 들어갔다. '우리 시골로 갈 건데 너도 갈래?'라며 남의 집 딸내미한테 묻듯 물어오는 부모님의 말에 당연히 당연히 예스를 외쳤다. 딸내미 꿈도 시골살이라는 걸 부모님은 모르셨겠지.


전에 살던 아파트는 아주 오래전 산을 깎아 만든 부지였지에 생물들이 참 잘 자랐다. 온 곳이 나무와 풀로 우거져 숲을 만들었고, 아파트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공기가 좋았다. 우리 집은 1층이었던 터라 창문을 열면 나뭇잎들이 서로 들어오겠다 성화였고 매미도 바로 앞에서 울어댔다. 그 덕에 여름에는 온 창문을 열고 바닥에 누워 책을 읽으면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들어와 책장을 넘겨주곤 했다. 난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그때 누리던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는데 시골의 전원주택이라니! 낭만이잖아~!

우리 아빠는 손재주가 좋아 달랑 있던 집 한 채 옆에 정자나 그네나 벤치 같은 것들을 잔뜩 만들어냈다. 집 곳곳이 놀이터였다.

유독 어릴 때부터 날씨를 많이 타던 나는 화창한 날이면 기분이 최고조였고 우중충한 날이면 우울했다. 그런데 정원을 품은 집에서는 이런 날은 이래서 좋고 저런 날은 저래서 좋았다.


하루는 5년의 도파민을 마무리하고 집에 온 날이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줄 흐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야속하게도 하늘은 참 예뻤고 맑은 바람은 지나치게 상쾌했다. 밭일을 하시던 부모님과 뛰놀던 강아지는 에너지 넘쳤고 행복했다. 꽃밭의 꽃들은 각각의 색을 가지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 까만 먹구름 가득한 마음에 쪽빛이 비쳤고 나는 이제부터 살아있는 것들만을 사랑하겠다 다짐했다.





(2) 한량과 놈팡이의 한 끗 차이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전원주택 생활은 정말 바쁜데 또 정말 여유롭다 '바쁜'의 주체는 아마도 몸이고 '여유롭다'는 마음이겠지. 그런데 또 바쁜 건 내 몸도 아니다. 부모님이 다 일구시고 나는 가끔 도와주는 정도였기 때문. 아무튼 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집의 모습을 갖추어놓고 나니, 이제는 할 일이 없었다.


시골 마을이었기에 편의점을 하나 갈려도 차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점점 심심해져 갔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잘 갔다.

하는 것 없이 심심한데 시간만 잘 가는 아까운 시간들의 연속이었고, 어느 날 '나 이렇게 막살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다 각자의 일로 돈을 벌어오느라 밖에서 열심히였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도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택했다. 이사하면서 어느 정도의 책은 처분하고 들고 온 터라 많지는 않았다. 그중 아무 책이나 뽑아 들고 무턱대고 나갔다. 나가봤자 집이지만 하루는 정자에 배 깔고 누워 소설책을 읽고, 하루는 벤치에 앉아 시집을 읽었다. 한 장 읽고 산을 보고, 한 장 읽고 꽃밭을 보고 한 장 읽고 공기를 깊게 마시는 모든 것이 힐링이었다.


읽을 책이 사라질 무렵, 우연히 당근에서 가지고 있는 책이랑 자신의 책을 교환하자는 글을 보았고 거래를 하러 당장 뛰쳐나갔다. 새로운 책을 돈을 들이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후로 어플을 드나들면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수집했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책을 주고받는 것 말고 책을 읽은 생각도 주고받으면 어떨까?' 싶어 모임을 찾아봤고, 마침 책방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참여하게 됐다. 책을 읽고 서로의 소감, 나아가 철학까지 공유하는 수요일 저녁 시간이 참 소중했다. 혼자 읽던 책이,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다.

언젠가 정기 독서 모임을 하나 만들고 싶다. 내가 '독서 지기'로서 책방 지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모임원들이 주인공이 되는. 각 콘텐츠의 안내자가 되어 여러 독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우리'만의 이야기 공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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