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아하는 일을 버티며 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을 잃었다.
잘 버티는 사람, 사실은 잘 넘어지는 사람
조금 늦은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은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조급한 마음에 준비 없이 바로 취직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직업이었기에 한 곳만 보고 달렸고 이미 준비가 된 줄 알았다. 어느 정도 잘 해낼 능력이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을 때였다. 중요한 건 마음의 준비였는데, 휴학을 했기에 더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죄책감에서 온 성급함이 마음의 여유를 잊게 만들었다. 어찌어찌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를 만들어냈고 원하던 프로그램에 방송작가로 무사히 취업했다. 취업의 문이 좁은 것도,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동경하던 일이었기에 날뛰듯 기뻤다.
회사 내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프로그램이라 모든 걸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했고 인력도 부족했지만 잘 해냈다. 출퇴근이 따로 없도록 매일 일만 하는 삶이었지만 나름대로 뿌듯하고 괜찮았다. 처음인데도 손 빠르고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니까 선배들이 모든 일을 몰아주었다. 배움의 일이니까 기회 자체에 감사했다. 그렇게 성장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본 내 몸은 살이 너무 빠져 퀭해졌고,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다. 그냥 그래야 하니까 해냈다.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줄 알고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뼈를 갈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던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이 일을 '버티면서' 하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뭐든 버티는 건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고 본다. 혹자는 '버틴다'를 꾸준함과 끈기로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그 단어 안에는 '힘들지만, 괴롭지만'의 부정 단어가 아닌 '재밌으니, 할만하니'의 긍정 단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다.
나는 잘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냥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항상 마음을 망가뜨려서 걱정이었는데, 그 모습을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일에서 마주한 거다. 그 감정이 덧없고 무서워 그 길로 나는 퇴사했다.
(2) 자연과 사람, 모든 생명은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돌봐야'한다.
식물을 가꾸듯 동물을 아끼듯 나를 돌보았더라면
내가 있던 프로그램은 자연과 사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였다. 자연을 좋아하는 마음과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내게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출연자들을 대하고 자연과 관련된 글을 쓰는 일은 즐거웠다. 나도 그들만큼의 뜻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연 속 집에 산다는 공통점으로 많이 공감하고 소통했다.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산다고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또 시청자들에게 전하기 위한 표현을 하기 위한 모든 과정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어린 나에겐 그들이 쌓아온 시간을 뛰어넘어야 할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도움받은 책이 토르비에른 에켈룬의 [두 발의 고독]이다. 시간과 공간을 사는 사람이 자연을 걷는 이유를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우리가 쉽게 잊을 만한 것들을 자연을 통해 다시금 알려준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내 고무장화가 부드러운 풀밭에 푹 빠지던 느낌까지 오롯이 되살아났다."와 같이 감각을 되살리게 하는 문구들. 내게 너무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서 출연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꽃과 나무, 새의 이름을 다 알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 그때의 즐거움이 떠올라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에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꽃과 나무를 관리하는 방법, 돌을 깔고 자연 속 공간을 조성하는 일까지. 너무 재밌었다.
자연을 대할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이 생명이 잘 살도록 사랑의 마음만 담으면 된다.
자연을 만나고 공부를 하면서 어쩌면 나는 이 마음으로 나를 돌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