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의 인간이 피워냈을지라도 생각과 감정은 한 갈래일 수 없다. 여러 갈래의 길목에서 내가 어떤 선택과 경험에 발을 들이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목소리들을 만들어낸다.'
잊고 있던 나의 인생책 매. 나만 알기 아까운 마음에 '매'를 아냐고 물어보고 다녔던, 당연히 모른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속상해하던 순수한 아이의 책이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오는 아파트 이동도서관에서 빌린 책. 종이 대출증을 처음 발급받고 처음 빌린 책. 그것도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의 흥분이 몰려들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예전 살던 동네로 다시 이사를 왔다. 10년 넘게 지났는데도 여전한 이동도서관 버스를 발견했다. 너무나 벅찬 마음에 '매'를 떠올리며 e북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 매에게도 자신에게도 자유를 주는 모습.
초등학생의 나도 이 이유 때문에 매를 좋아했던 걸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일단 매 그림이 너무 멋있었고, 매라는 새를 처음 알아 흥미로웠고, 남매의 모습을 보며 오빠와 내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때문에 그 어린 마음에도 섣불리 인생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때의 경험으로만 이름을 붙이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령 그게 같은 '나'란 인간이 만들어 낸, 한 사람의 머리와 마음에서 나온 생각과 감정일지라도.
인생의 책이든 영화든 '인생'을 붙이는 건 나의 모든 걸 건다는 뜻이 아닐까.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수단. 그래서 함부로 붙일 수 없기에 신중하고, 비밀스럽고 아끼는 마음이 함께하는 것 같다. 살면서 인생책, 인생영화도 바뀌듯, 혹은 계속해서 쌓아지듯 나에 대한 경험도 쌓이고 데이터도 바뀌는 것 같다. 당시의 내가 뽑았던 인생__을 보면 그때의 나는 무슨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2) 중학생의 '터키, 내 마음속에 들어오다'
'나는 나를 버리고 막 살기로 했다. 그때 얻은 건 자유와 가벼움이었지만 그게 생각을 얕음으로 이끌었다. 언제나 수면 위 찰랑임은 보기에만 아름답다. 결코 지속될 수 없다.'
부끄럽게도 내가 쓴 책. 공부에 흥미 없던 내게 국어 수업은 유일한 놀이 시간이었다. 원 없이 읽어내고 내 멋대로 해석하고 마음껏 풀어내는 시간은 FM 범생이였던 내게 최고의 일탈이었다.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작가셨고 자연스레 수행평가 과정으로 책쓰기 활동을 했다. 당시 가고 싶었던 터키를 생각하며 가상 여행기를 써냈다. 글 쓰는 걸 나름 좋아했기에 수월하게 진행시켰고 내 책이 선정되어 학교 자체 출판을 해주었다. 가히 살아온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최고의 이면에는 최악도 함께임을 알게 되었다.
내 글이, 같이 뽑힌 친구의 글과는 달리 억압되고 딱딱하다는 말.
싫은 소리 듣기 싫어 범생이의 삶을 택한 나는 그런 비평은 처음 들어봤다. 그리고 나름의 성격 콤플렉스였기에 많은 상처가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나를 버렸다. 모든 나를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친구의 모든 모습이 부러워 가진 강박을 전부 버리고 (이를테면 모든 걸 기록하기) 막살기로 했다. 생각 없이, 자유롭게.
그 신조는 스무 살 중반까지도 이어졌고 나름대로 행복한 낙관주의자로서 인생을 편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가고 실패를 겪고 나서 일어나기 힘들어지면서 그게 약점이 될 거라는 걸 그땐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