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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n 18. 2021

링컨생가와 백두산 들쭉밭

이상묵 선생 시집

“생각은 틀렸는데 말은 아름답다던가 생각은 옳았는데 말은 미치지 못함은 글쓰기의 옹이를 남기는 일이다.”

글쓰기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래서 글쓰는 사람중에선 자신을 "천형"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글쓰는 일을 평생 하다간 토론토 시인 이상묵 선생의 표현을 보니, 그의 고뇌가 엿보인다.


생각은 옳아야 하고, 말은 아름다와야 하는데, 언제나 무엇인가 못미친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를 중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욕조”에 관한 시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 책속에 있겠지 하고 한권을 다 읽으면서 골라내어보았다.


일상의 세월


누구 몸에 기준했는지

표준 욕조 속에 

내 몸은 담기지 않습니다

무릎이 잠기면

가슴이 물 밖으로 나옵니다

가슴이 잠기면

무릎이 물 밖으로 나옵니다

또 하루가 어두워지고

욕조의 물 속에 들어가 눕습니다

벽을 허물고 방 하나를 없앤 다음

욕실을 늘린다는 꿈도 함께 말입니다


-태반의 양수 속에서

헤엄치며 발길질 할 때

부족 없이 감싸주던 물-


더운 김은 거울 위에서

다시 물방울이 되고

문득 깨닫습니다

가슴을 덮히기 위해

무릎을 내놓는다는 것

무릎을 덥히기 위해

가슴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아마도 이 시였지 싶다.


기억도 선명한

“금주의 시”란 표제를 단 사각의 박스.

청타로 찍어서 오려붙여 신문판형을 만들던 신문사 편집실에서 내가 오려붙이면서, 시에서 눈을 뗄수 없었던 그 시는 “목욕”에 관한 시였다.


그분이 쓴 시를 모은 “링컨 생가와 백두산 들쭉밭”을 다시금 읽어봤다. 내가 이민오던 1980년대 후반 그 즈음 등단하고,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셨던 것 같다. 


이 전집에는 제1시집 링컨 생가에서, 제2시집 백두산 들쭉밭에서가 담겨있고, 그후에 쓴 글을 모아 제3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의 언덕에서, 제4부 애리조나 선인장외, 제5부 문화와 역사의 기행시편으로 묶여져있다.


요즘 들꽃에 눈을 많이 주고 있는 편인데, 사이드로드6 이라는 시에서 눈을 멈춘다.


사이드 로드6 

들길을 걷다보면/작년 이맘때 피었던 꽃들이/가는 곳마다 가득 차 있다/자갈 틈 사이에 엉겅퀴꽃/메마른 등성이에서/시들 줄 모르는 흰 들국화/들판 여기저기 토끼풀들도/안심하고 꽃피우는 걸 보면/나도 하나님의 꽃병에/꽃혀 있는 것 같다/여름이 가면/저 꽃들이 떨어뜨린 씨앗들은/바람에 날려가겠지만/얼지 않은 흙 속에 숨겨주는 이 있어/나도 내년 이맘때/다시 피어날 것만 같다


이 시를 읽다보면, 나도 한송이 들꽃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꽃병에 꽃혀있는 들꽃이. 


사이드 로드7 의 시 중간에 보면

내발 밑에서/소리를 내는 모래알들도/나를 기다리지 않았다면/천년이고 만년이고/제몸을 쪼개지 않았을 것이다


길을 걸어야 느낄 수 있는 모래알갱이들의 아우성. 그 아우성치며 보내는 애정에 일일이 답한다.





상묵선생은 모래알에서부터 곁에 있는 모든 사물,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셨다. 글같지 않은 글을 쓰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넓게 소비되는 글도 있고, 몇사람에게 소비되는 글도 있다. 그 소비의 양이 적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글쓰기를 멈추지 말고, 꾸준히 해야하지 않겠냐?”면서 글쓰기를 응원해주시곤 했다. 처음 인터넷 카페가 유행했을때 토론토 지역 문인들의 모임인 문협카페를 일반인에게도 공개해, 여러 사람이 읽고 여러 사람이 글을 쓰게 유도하셨다. 그일을 문협회장이 되면서 맡아하셨는데, “온라인 카페를 오프라인처럼 운영”해서 놀랬었다. 글쓸수 있는 사람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글쓰기를 독려했다. 상묵선생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1960년대 말 이민온 이민 개척자로 살아왔지만, 모국의 언어를 갈고닦는 일을 평생 하셨다. 


“새벽하늘은/ 일찍 일어난 사람을 위해/깨끗하게 닦아 논 거울과 같다’(가을 하늘) 

“가출한 시의 행방을 찾아 밖에 나선다/굳어있는 언어들의 벽돌 틈새로/골다공증의 바람이 할퀴고 지나갔다”(두개째는 공짜)

“위에있는 지퍼를 열면/고귀한 사유의 그 현장에서/생달걀, 꽃다발, 붉은 포도주/또 심장에서 올려보낸/생혈의 시도 꺼낼 수 있는데/ 머리에서 나오는 건/아무도 웃지 않는다”(열리지 않는 지퍼)


단아한 싯귀부터, 시쓰기의 어려움을 비유를 들어 표기한 시들까지 그의 삶은 시에 녹아있다. 어떤 역사적인 상황에서는 날까롭지만, 서정적인 감각 또한 뛰어나다.


상묵선생의 시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간절히 원하는 그의 애끓는 조국애가 읽힌다. 분단을 조장하는 세력들에게 크고 작은 펀치를 꾸준히 날려왔다. 분단50주년이 되는 1995년 북한을 방문하고, 기행문을 썼다. 그당시의 살벌했던 남북 관계에서 보면, 북한방문 자체로도 뉴스거리가 될수도 있고, 주목받을 수 있었는데, 그는 통일의 열망 하나로 해외에 파견된 민주투사로 살아내셨다. 


상묵선생이 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분은 갔어도 나는 그분을 자주 생각한다. 그의 시안에 살아있는  ㄱㄴㄷ 여사는 우리들이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그저 영어가 딸리는 동양인 아줌마가 아니라, 언어 대신 미소라도 줄 수 있는 끙끙대는 시인이라고, 상묵 선생은 오늘의 평범한 우리들에게 예쁜 옷을 입히신다.


말하는 꽃


전직 국어교사 ㄱㄴㄷ 여사는요

떨어지면서도 웃어야 하는 단풍잎

의 나라 구멍가게 주인이 됐지만요

싸리꽃 분분히 흩날리는 눈발들

카운터에 팔꿈치 괴고 시를 쓰지요

봉숭아꽃은 장독대에서 말을 걸고요

도라지꽃도 바위 뒤에서 말을 걸고요

남한강 기슭 한참 헤매고 있는데요

하이! 하고 들어서는 손님 인사에
시클라멘 꽃잎들 붉어집니다

오늘도 찬동할 수 없는 날씨

찬동할 수 없는 대꾸에 말문이 막히고

찬 물에 발 담그고 있는 카네이션꽃들

거기 안개꽃 두 세 묶음 글라디올러스 몇 송이

꽃대마다 물이 차서 입 다물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을 때

마지막 한 마디 우수리로 얹을 수 없을 때

풍선껌 집어가는 아이의 손에

한 송이의 미소를 쥐어주는 ㄱㄴㄷ 여사

낙타 다리처럼 긴 겨울

그치지 않는 눈발

남한강 기슭 따라 시 한송이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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