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레시피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3주 후에 뵙겠다고 한 것이 벌써 오늘입니다.
간단한 리포트 형식으로 저의 우울증 자가 치료에 대한 레시피를 공개하겠다는 개수작을 부렸습니다.
정중히 사과부터 드립니다.
지긋지긋한 리포트들과 인생의 숙제들 속에서 허우적대던 제가 또 다른 과제를 만들어 버린 겁니다. 어리석죠?
리포트는 개뿔 그냥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가 치료를 실행한 결과!
저의 우울감은 그즈음에 시작된 평생 멈추지 않을 거 같던 기침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날부터 기침 가래가 찰싹 붙어서 데리고 날아갔나? 싶을 만큼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한마디로 극뽁~!
어쩌면 기침, 가래, 두통, 만성피로 등도 우울증의 신체화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3주간 저는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요?
저는 소비했습니다.
돈과 시간을, 체력을, 감정을..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합니다. 어떤 이는 아버지를 때려죽였는데도 고작 3년을 살고 나와서 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겨우 4년을 살고 나와서 나오자마자 또 사람을 죽였습니다. 마지막엔 그래도 뭐 이십 년을 넘게 살았죠? 그렇게 반성 없이 사람을 셋이나 죽인 자를 사회는 무한하게 용서하고 기회를 줘서 현재 우리 사이 어딘가 악마의 탈을 쓰고 잘살고 있을 겁니다. (2025년 출소)
그런데 어찌하여 저는 사소한 저의 결점 하나, 과거 하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감옥에 가둬놓은 걸 까요?
그래서 저는 제 깊은 곳에 꽁꽁 묶어 두었던 어두운 과거와 잘못들을 용서해 주고 풀어 주기로 했습니다.
‘나의 잘못된 선택과 꾀죄죄한 결점들이여 너희는 충분히 그 죗값을 치렀으니 당당히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도 된단다. 방생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떤 문제가 저를 들이받을 때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질책하기보다는 ‘문제가 너무 어렵잖아? 문제가 잘못했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과제는 망했습니다.
학점이 어찌 나올지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프로젝트! 네모난 종이 안에 미해결 된 스트레스의 원인을 써대고 해결해 나가며 성취감을 얻고자 했던 겁니다.
청소니, 운동이니, 산책이니, 리포트니, 지금 당장 현관 앞에 나가 운동화 끈을 묶으면 되는 그런 간단한 일들부터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리포트까지 시원하게 접은 저는 운동화 끈을 묶고 개를 산책시키러 밤공기를 마시며 집 근처를 뛰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곧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차게 자빠져서 무릎이 깨지고 절뚝이며 집에 들어와 또 자괴감에 빠져버렸습니다.
밴드를 붙이며 방정맞은 반려견 탓을 하고 있었던 저는 ‘산책하다 말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싶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며 꼬리를 흔드는 사랑스러운 반려견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다 내 탓이야, 내가 뛰라고 했으니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고 재수가 없는 걸까?.’
그렇게 내 탓을 하며 훌쩍이다 또다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염병!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건 집 앞 사거리에서 아크로바틱 수준으로 자빠져서 쪽팔려서 울고 있는 거잖아? 이게 울일 이야? 아직 이렇게 자빠져도 도가니에 금이 가지 않을 만큼 골밀도가 높다는 것은 자축할 만한 일이지. 그리고 넘어진 게 왜 내 탓이야? 늘 달리던 코스, 호흡이 척척 맞았던 나와 반려견, 넘어질 상황도 아니었어! 이건 잡귀가 들러붙어 나를 밀어버린 게 분명해.’
사실, 우울감이 너무 무거울 땐 나보다 더 큰 존재를 상정하는 것도 도움이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가 악의 존재를 인정하잖아요? 크리스천은 사탄을, 불교와 유교에서도 귀신을 말하죠.
결국 선과 악, 빛과 어둠은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제 우울증 극복 레시피 1번은 바로
문제 직면하기- 그 문제를 가상의 존재에게 떠넘기기!
우울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비합리적 신념! “모든 건 내 선택이었다. 과거의 일이든 미래의 벌어질 일이든 모두 ‘내 탓이다’.” 그 ‘내 탓’ 사이클에 갇혀버리면 답이 없는 겁니다.
물론 반대로 모든 나쁜 일에 원인을 남에게서 찾고 항상 남 탓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정작 본인은 불편하지 않다는 거.
그런데 그 불편함을 굳이 내가?
그렇게 늘 방구석에 처박혀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 “모든 게 다 내 탓이야”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도 점점 소심해지고, 세상과의 연결도 좁아지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단절을 선택하고, 단절은 고립이란 우울의 형태로 곁에 남게 되는 거죠.
결국 모두 내 탓이고 내가 해결하려 하다 보면 그 짐의 무게에 깔려 숨을 쉴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 숨 막히고 괴롭고 외로운 감정 그것들이 우울감입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 레시피는!
문제 해결하기- 주제 파악과 함께 ‘어쩌라고?’ 정신을 탑재하기.
들으신 대로 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뭐? 그렇게 보면 뭐? 못하겠는데 어쩌라고?
내 능력이 여기까진데 어쩌라고?.’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더군요.
그러나 그 위 상위권에 차지하고 있던 다시 태어난다 한들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문제들! 그것을 저는 마지막 레시피! ‘꿈’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내가 당장 로또에 맞지 않는 한,
내가 이 세계로 소환되지 않는 한,
타임머신을 타고 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일들!
그런 걸로 고민하고 아파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잠들기 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쁜 생각의 연산 작용을 퇴치하는 상상을 하며 주문을 거는 겁니다. 누가 압니까? 정말로 그 주문으로 이 세계의 누군가 치트키를 주고 소환해 줄지?
잠은 우리 일상의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면부족은 온갖 짜증에 원인이 되고 두통과 어지러움 울렁거림의 신체적 고통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들은 그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잘라내지 못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서 잠자리에서 핸드폰을 사용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울증과 별개로 스마트폰 중독과 수면장애라는 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우울증이라는 녀석을 쉽게 봤다가는 합병증이 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단순합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 정신건강도 결국 생리적인 루틴에서 시작되니까요.
글을 읽고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계신 어떤 분들, 저를 비웃으실 겁니까? 당신이 뭘 아냐고 우울증이 정말 맞았냐고 물으실 겁니까?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찌르는 사람은 찔린 사람의 고통을 절대 알 수 없듯이. 타인의 고통에 자신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우울증은 일종의 독감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거고 완치가 됐다 싶다가도,
몹시도 추운, 아주 힘들었을 어떤 날, 다시 까꿍하고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들, 우울증이라는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시고 이겨내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한번 운동화 끈을 묶어보세요. 넘어져도 ‘니미랄’, ‘염병’, ‘재수 없네’ 아는 욕을 다 퍼붓고 일어나십시오. 재수가 없었을 뿐이니까요.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다 넘어지면 일어날 수 없거든요.
저는 그렇게 안고 살아가려 합니다. 우울증이라는 불치병을.
그러나 저의 레시피대로 자가 치료를 한 지금
저는 최소한 내일을 살고 싶어 졌습니다.
몹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