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띵동-
호텔 방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
“아이씨 뭐야, 방해 금지 표지도 붙여놨는데.”
정남은 투덜댔지만 짧은 초인종 소리를 무시해버리고 확장된 동공으로 침대위 수련의 눈부신 전라에 다시 눈을 돌렸다.
머릿속을 가득채운 더러운 욕망이 눈가에 들러붙어 번뜩였고 고인침을 쉴새없이 삼키며 인형처럼 무력하게 누워 눈물만 흘리고 있는 수련의 몸 위로 드디어 엎어지듯 자기 몸을 던지려던 그 순간!
또 다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띵동-띵동-띵동-띵동
이번 초인종 소리는 인내심이 없었다.
정남도 이대로 무시할 수는 없었던지 침대위에 수련을 그대로 둔 채 자신만 타월로 하반신을 가리고 호텔 방 문 쪽으로 간다.
목소리만 겨우 전달 될만큼 문을 열어 젖히고 문뒤에 서서 신경질적으로 묻는 정남.
“뭐요? 무슨일.”
-딱!-
“악!”
정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짧은 문틈으로 지훈의 한쪽 발이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호텔 문손잡이를 붙잡고 체중을 실은 상반신으로 그 문을 짧게 튕기듯 쳐내어 안쪽에 서있던 정남의 머리통을 세차게 가격함과 동시에 자신은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별이 번쩍할 만큼 세게도 들이박혔는지 정남은 머리통을 붙잡고 잠시 남자의 정체를 물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지훈은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수련을 찾았다. 마치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고 찾아온 사람처럼 그의 걸음엔 단 한 순간도 주저함도 머무름도 없었다.
단지 전라의 상태로 눈물만 흘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그의 반듯한 얼굴에 일렁이는 분노와 슬픔, 고통이 쉴 새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지훈이 침대보로 수련을 감싸안고 있을 때쯤 정남이 정신을 차리고 지훈에게 다가왔다. 정남도 피지컬로 따지자면 지훈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다.
수련을 안으려는 지훈의 어깨를 잡으며 정남이 쌍욕을 퍼부었다.
“이 xx새끼가 뒈지고 싶나 너 뭐.!아!!!악!!씨발!!이거 안놔?악!!.”
이번에도 정남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깨를 잡으려던 정남의 손은 어느새 지훈의 오른손에 잡혀있었고 지훈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자기 어깨 위에 얹혀 있던 정남의 왼손을 낚아채 엄지손가락 하나로 그의 약지와 새끼손 가락 사이를 눌렀다.
“엄살 부리지 마, 좀만 더 힘줬으면 가루가 됐을 거야.”
여전히 수련의 몸을 침대 시트로 애벌레처럼 동여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는 지훈의 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으나 정남은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앞에 남자의 커다란 등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듯 엄청난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정남이 잡혔던 손을 만지작 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수련을 그대로 안고 나가는 지훈을 보고 제대로 겁을 먹고 길까지 터주었다.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었나보다.
“저.. 저기 뭐...뭐뭔데?? 여자 친구라도 돼?.”
지훈이 그대로 밖을 나서려다 잠시 멈춰서서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내 전부다! 여기서 멈춘걸. 다행으로 생각해. 난 지금 내 여자를 본 네 눈깔을 뽑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거든. 한 번만 더 날 뒤 돌아보게 해봐. 그땐 뽑아 달라는 얘기로 생각하고 그 더러운 눈 기꺼이 가져가 줄게.”
정남은 지훈의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약도 술도 모든 게 깨고 차가운 땀이 서서히 등골을 타고 내려가며 출처 가 분명한 공포가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수련을 차에 조심스레 태우고 안전띠까지 매준 뒤 지훈도 그제야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정남이 어떤 것을 얼마나 수련에게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련도 시간이 지나가고 찬 바람도 쐬고 지훈이 주는 물도 받아 마시다 보니 점점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지훈은 묻고 싶은 게 많았으나 수련의 지금 상태를 보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지품이라고는 수련의 핸드폰밖에 챙겨올 수가 없었다.
수련은 초점잃은 눈으로 한 곳만 응시하며 손발을 덜덜 떨면서 거실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수련아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쉬어.”
지훈이 수련을 안아 일으키려 하자 수련이 그 손을 세게 뿌리쳤다. 부들거리는 가녀린 몸에서는 불길하고 음험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고집스럽게도 무언가 생각해 내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 핸드폰을 집어든 수련.
은교에게 전화를 건다.
벨소리가 거의 끊어질 때쯤 됐을 때 은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너 어데고? 똥싸러 너무 오래 간 거 아니야?. 아니믄 벌써 디비졌나?.-
“은교야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 이름 나이 전화번호 다 줘봐. 네가 알지 그럼 누가 알아? 뭐? 알았어. 일단 끊어봐.”
은교와 통화를 종료하고 수련의 방황하던 눈동자가 천장을 치솟았다. 심호흡을 다시 하고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이번엔 은정언니였다.
그러나 그녀는 통화 중이었다.
수련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핸드폰을 한동안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는 수련.
"왜 네 얼굴이 그럴줄 알았다고 말하는거 같지?. 수련아, 아무도 믿지 말랬지? 혹시 네 친구들.."
그제야 지훈을 올려다본다.
"너 진짜 도깨비야? 도깨비는 사람 마음도 읽어?.아니야 나랑 가장 친한 내 사람들이야. 그럴리없어. 절대 아닐거야 이유가 있을거야.뭔가 오해가.."
그리고 펑펑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수련을 끌어안고 달래던 지훈. 마음껏 울게 내버려두었다.
“미안해 지훈아. 내가 정말 미안했어. 네 말이 다 맞았어. 그건 그냥 사람이었어. 평소에 가끔 보이던 흐릿하고 이상한 존재들이 아니라 네 말처럼 그냥 사람이었어. 그런데 날 죽이겠다고 했어. 전기톱도 봤어.진짜야. 아마 그건 내가 미쳐서 그런 거겠지? 환청, 환시?. 나 이제 정말 정신병원 가야 하는 거야?.”
지훈에게 매달리듯 불안한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수련이었다.
그녀가 겪지 않았어도 될 일들.. 평범한 사람이면 생기지 않을 끔찍한 일들. 지훈은 막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늘 이렇게 한발 늦고 마는 자신이 한심하게 마저 느껴졌다.
“아니야, 넌 미친게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단호하고 확고한 지훈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수련이 무언가 떠올렸다.
“그럼 이건 분명 마약이야. 난 그렇게 느꼈어. 미국에서 느꼈던 그때랑 기분이 비슷했어. 네가 오지 않았다면 난 그 남자를 죽였을지도 몰라.”
이들 사이의 한숨이 수없이 많이 주고 갔다. 또 지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수련의 머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수련아 너는 아무도 죽이지 않아. 예전에도 앞으로도. 너는…. 아니야.”
수련이 뭔가 결심했다는 듯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든다.
119 버튼을 누른다.
“제가 오늘 마약을 먹은 거 같아요. 검사 할 수 있나요?.”
119 상담원은 112로 연결해 주고 곧 수련의 집에 파출소 출동대원이 먼저 도착하고 곧이어 5분도 채 안 되어 국과수 과학수사대 팀원이 두 명 더 도착했다.
간단한 소변검사 그 자리에서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외로 음성이었다.
수련은 솔직히 99프로 양성반응을 예상했다. 충격으로 경찰들이 뭐라고 물어보는지 대답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경찰은 몇 가지 질문들을 퍼부어 댔다. 수련이 그중에 알아들은 거 하나는 성폭행 여부였다.
약을 했든 안 했든 강제로 그런 시도 가 있었다면 신고할 수 있으니 신고 하시겠냐는 질문 이었다.
수련은 말까지 더듬어 가며 적극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음을 재차 반복하며 강조 하기 시작했다.
‘지훈이 내 알몸을 봤어. 벌써 내가 무슨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어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믿지 않을 거야.’
둘 사이에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 없었던 오해가 만들어 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12월 초하루 밤.
지훈은 수련이 집을 나서기 전 은교와 다시 통화하는 것을 자세히 들었다.
“뭐라고? 수영복을 챙겨오라고? 왜? 호텔에서 풀 파티? 이 날씨에?? 아~ 자쿠지? 일단 알았어.”
지훈은 강남 최고급 호텔, 풀 파티, 자쿠지 세 단어를 검색해서 수련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다.
그 근처에서 차를 대기시켜 놓고 초조한 마음으로 제발 아무 일이 없기만을 빌고 또 빌고 있었다.
반지가 울리지 않기를….
시간은 아홉 시를 넘어가고 지훈의 입도 바싹바싹 메말라 갔다.
차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참으로 흉흉하고 불길한 밤이었다.
아홉 시 40분이 되어도 반지는 울리지 않았다. 지훈의 심장은 여전히 건강하게 잘 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훈은 이질적이지만 익숙한 기(氣)를 느끼고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능숙하게 타이를 풀어 길게 늘어뜨린 홍실을 만들어 쥐었다.
“응?!! 네가 여기 왜?.”
지훈의 고민은 잠시였다.
수련에 곁에 오래 붙어있던 처녀 귀신. 언젠가 지훈이 소멸시키려고 했던, 수련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쫄보’라고 부르던 떠돌이 귀신이었다.
겁도 없이 지훈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게다가 따라오라는 듯 꽁지를 늘어뜨리고 뒤를 돌아보며 가는 것은 그녀가 위험하다는 것!.
그렇게 함께 날 듯이 뛰어 당도 한곳이 그 호텔 방 문 앞이었다.
귀신도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귀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복도 가져다주고 위험을 알려주기도 하는 법이다.
수련은 이날 한 숨도 잠을 못이뤘다.
스스로를 미친년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아닐 거라고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걸 거라고, 그것도 아니면 정말 영매 체질 같은 게 아닐까 어느 정도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간밤에 일로 마약 음성판정까지 받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들었다. 분명 보았다. 확실하게 모든 것이 느껴졌다.
텅 빈 몸뚱이였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전기톱이 있었다. 쇠칼과 쇠망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남자의 또박또박하고도 소름 끼치게 잔인한 그 말들을 정확하게 들었다.
무릎꿇고 빌고 있는 수련에게 몇 조각으로 잘라 줄까? 라고 물었다. 마지막 말은? 그 말도 정확히 들었다.
그게 다 사실이 아니라면 수련은 정말 미친 것이다.
괴로웠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지훈의 눈도 마주칠 수가 없어 돌려보냈다.
잘못한 건 없는데 아무것도 수련의 잘못은 없는데 죄책감이 밀려와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수련은 아침부터 화장대에 앉아 쾡한 얼굴을 들어 거울을 봤다.
혼잣말한다.
“너, 누구니?.”
또 눈물이 주룩 흐른다.
그때! 수련이 무심코 들여다본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고 한순간 숨이 멈췄다.
수련이 웃고 있다!
분명 수련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생각과 무너질 거 같은 마음으로 서글피 울고 있었다.
그러나 쉼 없이 흐르는 눈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두 눈은 반달모양으로 가늘게 접혀있고 입술은 말아 올린 듯이 기괴하게 양쪽으로 찢어져 웃고 있다!
“악!!!!!.”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수련이 비명을 지르며 화장대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숨었다.
자기 얼굴이 너무나 무서워서 어떤 귀신보다 더 무서워서 벌벌 떨며 숨어있다.
그 시각 은교와 은정
씩씩대는 은정과 불안한 표정의 은교.
“그 조빱새끼는 쫄아서 그렇게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다 된 밥에 똥 싸지르고, 지랄이야.”
은교가 은정의 눈치만 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래도 지금 ‘그게’ 나온 상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보니까 한 병 다 들이부었던데? 그 정도면 며칠 갈 수도 있어.”
은교의 말을 들은 은정이 눈알을 굴리더니 수긍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가서 확인해 보고 ‘그게’ 나왔다면 바로 죽여버리자. 우리 지금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왔어.”
은정의 상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두 눈의 살기는 벌써 누군가를 몇 번이고 죽이고도 남았을 만큼 지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