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집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살펴보다
10년 넘게 살다 보니 모든 게 낡았던 옛날 집. 어제는 아이와 함께 그 집 앞에 가보았다. 무엇을 염탐한다기보다는 그저 잘 있는지 안부 확인 같은 거였다.
아파트 앞에 가만히 서서 보니 복도에 나와 있는 먼지 가득한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우리 집 거실에서 우리들의 앨범과 사진을 보기 좋게 전시할 수 있었던 하얀 선반. 이제는 떠나버린 주인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것도 모자라 버려질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케아에서 사진이나 예쁜 표지의 책을 올려놓을 생각으로 구입해 두 줄로 벽에 걸어두었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아온 것들과 만든 작품, 포토북 등 너무 많이 놓여 있었다. 손쉽게 두고 볼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을 뽐내는 가장 핵심적인 게시판 같은 것이었다. 이사를 가면서 놓고 갈 수 있는 것은 두고 가면 알아서 처분하겠다는 다음 사람의 말을 듣고 그냥 두었다. 새로 갈 집에는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 않아 두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오래된 새시를 교체하지 않고 살았었다. 딱히 새시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또한 아파트 특성상 바깥쪽에 둥글게 들어가는 새시 가격 탓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뻐 보이려고 설계한 것이었지만 둥근 새시를 보자 창호를 하시는 분이 비용이 많이 든다며 무척 안타까워하신 이후는 그냥 그렇게 눌러살았다. 옛날 집은 그 둥근 새시를 쪼개어 3 등분해서 둥근 면을 커버했고, 제법 두꺼운 하얀 새시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듯 새롭게 치장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갓집의 단점을 잘 헤아리겠지,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된 나의 예전 집은 이렇게 밖에서만 볼 수 있다. 속마음은 이제 모른다. 매수인과 친분이 없으니 당연히 들어갈 수 없다. 등기도 이미 남의 것이 되었다. 두고 온 에어컨의 실외기만 그대로인 게 보인다. 미련 없이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온전히 내 소유였던 첫 번째 집. 그 집은 이제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돌아오는 내내 오래된 연인의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는 마음이었고, 추억 가득한 연인에 대한 작별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피어올랐다.
먼 곳으로 이사 가지 않았으니 내내 보일 것이다. 한 때는 나의 집이었던 그 집이 무탈하게 좋은 쉼터가 되길 기원해 본다. 어서 하재영 작가님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어봐야겠다. 집에 대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동안 오래오래 생각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