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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엔 빵집에서 일해요 2

빵집 알바 아줌마는 기도합니다.

by 밍님

2주 전부터 옆동네 작은 빵집에 월~수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적지 않은 이에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 빵집의 모든 빵은 사장님이 열심히 만드시기에 20대의 내가 따 두었던 제과 제빵 기능사 국가 자격증은 필요 없지만 어쨌든 맛있는 향기 가득한 빵과 쿠키 옆에서 일하고 있으니 20대의 내가 꿈꿨던 근무환경이다. 아침 9시 둘째 유치원 셔틀버스를 태워 보낸 뒤 나는 9시 15분~20분 사이에 집을 나선다.

목적지까지는 11 정거장 버스를 타면서부터 나는 기도를 한다. 일을 해보고 빵집에서 무심코 구입했던 빵들의 포장에도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은 식빵을 일자로 자르게 해 주세요.

빵 비닐의 프릴이 잘 만들어지게 해 주세요.

빵끈으로 야무지게 마무리하게 해 주세요.


9시 50분 빵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나를 먼저 반겨준다.

안녕하세요! 아기 엉덩이같이 뽀얗고 빵실 빵실한 반죽이 담긴 식빵틀을 오븐에 넣고 계신 사장님께 인사한다. 서둘러 손을 씻고 앞치마를 입으며 다시 한번 깨끗하고 예쁘게 포장하겠다는 결심을 되새겨본다.




업무의 첫 순서는 단과자빵 포장하기. 아이에게 읽어주며 내가 더 좋아하던 동화책 '구름빵'에 나온 구름빵 같이 동그랗고 예쁜 모닝빵부터 8개씩 포장한다. 다른 빵집 모닝빵보다 살짝 큰 사이즈에 동그랗게 올라온 모양이 아주 예쁘다. 나의 서툰 손길에 사장님이 새벽부터 만든 예쁜 빵이 눌리지 않게 조심히 옮겨 담는다. 그다음은 몇 번 사갔더니 우리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며 잘 먹었던 햄치즈롤. 햄치즈롤은 5개 포장과 2개 포장이 나눠져 있고 식은 빵을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는지 알려주는 스티커 붙여준다. 그리고 단팥빵. 우리 사장님 마음이 넉넉해서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분이라 팥과 호두가 어찌나 가득 들어있는지... 초보 아르바이트생에게 빵빵한 빵을 상처 없이 작은 비닐에 넣기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단과자빵을 다 포장한 후의 순서는 믹싱볼과 제빵 기구들의 설거지하기. 설거지 후에는 나를 긴장하게 하는 식빵포장이 기다리고 있다. 모닝빵과 햄치즈롤을 포장할 때에도 빵비닐 끝을 프릴 주름잡아 빵끈으로 마무리해 주는데 살짝 두껍고 단단한 재질의 비닐이라 초보가 포장해도 프릴이 멋지게 살아있어 어렵지 않지만 식빵포장용 비닐은 얇고 흐물거리는 재질이다. 식빵 넣은 채로 깔끔하게 프릴주름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실 프릴주름잡기 고민보다 더 급한 것은 식빵을 일자로 깔끔하게 자르는 것이다. 기계가 간격을 맞춰 잘라주는데 어려운 게 뭐가 있나 싶겠지만 기계가 어려워하는 몇 가지를 내가 적당히 잘 해결해 줘야 일자로 잘 잘린 빵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묘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빗금을 그리고 있는 식빵으로 잘라서 얼마나 속 끓였는지 모른다. 빵 속에 있는 단단한 충전재 때문에 수평이 맞지 않은 걸 발견하면 바로 균형을 맞춰줘야 예쁘게 일자로 잘린다. 기계가 빵을 다 잘라서 밑으로 떨어지기 전에 식빵비닐 속에 정확히 쏙 넣는 것! 박자감각과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흡사 리바운드 왕 강백호가 골대 밑에서 농구공을 기다리듯 잘리는 식빵을 쳐다보며 식빵비닐을 든 두 손을 대기한다. 종류별로 잘 정렬된 식빵들을 자르고 비닐에 프릴주름을 만들어 빵끈으로 마무리하는 시간 마음속으로 또 하나의 기도를 한다. 더 맛있어 보여라. 더 예쁘게 보여라. 초보 아르바이트생이 고군분투하며 빵 포장을 하고 판매를 하는 동안 사장님은 그다음 빵을 굽고 준비하신다. 새벽부터 나와서 이 예쁜 빵들을 반죽하고 굽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것이다. 힘들게 만드신 맛있는 빵들을 더 맛있어 보이게 깔끔하게 포장하고 싶고 그래서 더 잘 팔렸으면 좋겠다.


갑자기 새벽에 혼자 외로움과 싸우며 일했던 우리 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몇십 년 동안 한국 민속촌 양조장에서 찹쌀 동동주와 막걸리, 소주를 만드셨었다. 수시로 온도를 맞춰줘야 하고 발효 상태를 확인하며 술을 살피려 거의 매일 양조장에서 숙직근무를 하셨다. 낮에는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다니는 민속촌이지만 이른 저녁부터 다음날 오픈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교대근무하는 경비팀과 아빠가 일하시는 양조장에 각 한 명씩. 양조장은 민속촌 내에서도 제일 안 쪽 산과 맞닿아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숙직실은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매일 밤 얼마나 무섭고 외로우셨을까...

아빠는 혼자 술독을 확인하며 마음속으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하셨을 것이다. 장터에서 술이 잘 팔리지 않을 때에는 뭔가 놓친 게 있나 속 끓이기도 하셨는데 아빠가 속상하셨을 때 아빠의 술이 최고니까 걱정 말라고 어쩜 이렇게 잘 만드셨냐고 얘기해 드렸으면 좋았을걸...


혼자 묵묵하게 일하셨을 그 많은 이른 새벽을 생각해 본다. 무거운 술독을 옮기느라 아팠을 몸을 생각해 본다. 그 노고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던 예전의 내가 너무 회스러워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것이 아빠가 내게 남겨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와 뒤늦게 후회만 해봐야 소용없지. 내 가족뿐만 아니라 열심히 사는 이웃들의 하루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나는 빵집에서 만나는 모든 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예쁘게 포장하며 기도하고 응대한다. 아빠에게 전하지 못했던 진심과 친절을 담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


아빠가 돌아가신지 1년하고 8개월이 지났는데도 자꾸만 자꾸만 아빠생각이 난다.

영화, 드라마, 책에서 만나는 죽음의 모습마다 아빠가 생각나고 즐겁고 신기한 일, 새로운일을 겪을 때마다 생각이 나고 울어도 울어도 끝나지 않는 그리움과 후회때문에 일기를 써도 항상 끝에 아빠이야기가 들어간다. 있을때 잘하지 바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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