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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학번 세기말 아르바이트 백서

한국민속촌

by 밍님

수능 끝나자마자 갑자기 돈이 너무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빨리 일하고 싶어졌다. 부모님은 내 학비만 해도 부담되실 거라 용돈을 주기 힘드실 거고 대학생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니니까 곧 새 학기가 되면 입을 옷, 신발, 가방 등등 사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미리 아르바이트로 돈을 좀 벌어놔야지 맘이 좀 편할 것 같았다. 수능을 잘 봤든 못 봤든 이제 고등학교 졸업을 하게 될 거라 뭔가 홀가분하고 들떠 있었던 겨울이었다.


(한국민속촌 양조장 소장님이었던) 아빠찬스로 꽂아준 민속촌이 나의 첫 직장이었다.


98년 12월의 어느 일요일, 민속촌 매표소 앞에는 오픈 시간에 맞춰 그날의 아르바이트를 뽑는 직원을 기다리며 추위에 떠는 청소년~청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직원분이 나오셔서 각자의 파트를 정해주었는데 내가 해봤던 일들은 이런 것이었다.


과일집 - 예전에 참외를 팔아서 과일집이라고 하지만 간단한 과자들 판매와 군밤 굽기 주 업무, 한약방 - 쌍화차 서빙 및 설거지

장터 - 국밥 서빙과 설거지


그때의 민속촌은 주변에 바람을 막아줄 큰 건물들도 없고 산 끝과 연결되어 있어서 겨울에 어마무시하게 추웠던 기억이 난다. 너무 추워서 모닥불 옆에 있다가 장작 불씨가 큰언니 (몰래 신고 나온) 워커에 떨어져 크게 욕먹었던 기억 때문에 그 겨울의 추위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군밤 굽는 과일집 알바는 내심 모두 하고 싶어 하는 파트였다. 따뜻한 불 앞에 있고, 앉아서 하는 몇 안 되는 알바였으며, 가끔 한 두 개 군밤을 몰래 먹을 수도 있는 장점이 있어서 나도 선호했던 파트였다. 군밤을 초여름까지는 팔았는데 5월 땡볕에 벌게진 얼굴로 군밤 굽고 있는 나를 외국 관광객이 말도 없이 사진을 찍어갔었다. 지구 반바퀴 너머 어느 집 사진첩에 밀짚모자를 쓰고 빨간 얼굴로 군밤 굽고 있는 99년 5월의 내가 있을 것이다.


실제 한약을 판매할 수는 없어서 한약탕기에 쌍화차를 달여주는 찻집이었던 한약방. 나는 그곳에서 주로 설거지를 하고 약탕기에 달였던 찌꺼기들을 버리고 아주머니들이 만들어두신 쌍화탕 재료를 새로 꺼내 달일 준비를 했다.


사극에서 본 사약 대접 같이 하얀 대접에 담긴 쌍화차를 들고 호객행위를 하던 한약방 아주머니들은 한복에 쪽진 머리로 이렇게 크게 외치곤 하셨다.


겡끼가 모리모리데스



한약방 아주머니들은 일본말과 한국어를 섞어가며 건강해진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러면 지나가던 단체 일본 관광객들 웃으며 들어와 대접에 담긴 쌍화차를 새참 막걸리 마시듯 들이켜고 가는 것이었다. 쓴맛에 가까운 뜨거운 차를 어쩜 그렇게 빨리 들이키시는지 어린 나는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추운 날씨에 뜨뜻한 쌍화차 한 대접은 약이 맞고 호호 불어먹을 시간이 아까워 후딱 마시고 관광하러 가신 게 아니었을까 싶다. 외부 싱크대에서 하는 설거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고된 일이었지만 손님이 안 계실 때는 평상에 앉아 쉴 수 있게 해 주셨고 정 많던 한약방 아주머니들이 간식으로 귤도 주셔서 나름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민속촌에서 제일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필요로 하는 곳은 장터였다. 장터에 뽑히면 그날은 진짜 열심히 일만 해야 했다. 히 식사시간 대에는 국밥과 전, 동동주를 마시러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서 정신없었다. 나는 서빙하는 중간중간 우리 아빠가 만드신 동동주를 남기지 않고 다 드셨는지 확인해보기도 하고 싹 비어있는 술병을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추운 날씨에는 장터의 온돌방 자리가 인기 많았는데 그릇을 치우러 들어간 김에 쪼금 앉아서 쉬고 싶어도 비어있는 온돌방 자리를 매의 눈으로 찾아다니던 손님들이 금방 들어오셨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장터도 구역이 나눠져 있는데 그중 두부집은 온돌방도 많고 오며 가며 손두부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쟁반 위에 올려진 맑은 국물의 방금 만든 순두부 뚝배기, 투박하게 썰어낸 두부 김치도 어찌나 맛있어 보였는지 서빙하면서 침이 꼴깍 넘어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지금도 1998년 겨울 추웠던 민속촌 흙길, 따뜻한 국밥과 전, 장터 앞 커다란 가마솥과 장작더미의 뜨거운 불길이 생각난다. 99년 5월을 끝으로 민속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평일에 학교 끝나고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민속촌 양조장에 아빠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아빠는 나를 장터로 데려가서 장터 아주머니들께 우리 막내! 우리 막내!라고 하며 인사시키셨었다. 그때 장터 아주머니들께 인사하고 한두 점 얻어먹었던 인절미와 부침개 한쪽, 그 여름 시원했던 미숫가루의 맛과 함께 아빠가 흡족해하며 웃으셨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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