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타자기 이야기 1
타자기 덕후가 소개할 첫 번째 영화는 2006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 '타인의 삶'입니다.
통일 전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청하면서 그의 삶에 동화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드라이만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는 걸 듣고 있는 또 다른 주인공 비즐러...
누군가에게 영혼을 위로받는 그 순간을 연기한 배우와 연출한 연출자에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대사까지 완벽했던 영화! 이 영화에서 타자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4번째 주인공쯤은 된다고 봅니다.
타자기의 필체 감정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타자기가 언급됩니다.
- 독일 Groma 사의 Kolibri
그냥 봐도 작고 납작해서 휴대하기 편한 타자기로 보입니다.
지인의 배려로 잠시 사용해 본 적이 있는데 휴대용 타자기라 해도 독일 제품답게 타건감이 좋았던 기억입니다.
이탈리아 Olivetti 사의 Valentine
대부분의 수동타자기 수집가들이 한번쯤은 소장하게 되는 발렌타인 타자기!!
치명적이게 아름다운 디자인과 컬러 때문에 저도 홀딱 반해서 구입하고 아껴 썼던 기억입니다. 더 멋진 타자기를 갖고 싶어서 구입한 가격에 좋은 분께 양도했지만 가끔 생각나는 타자기입니다.
독일 Optima사의 Elite
이 타자기는 제가 써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두 대 소장 중인 독일타자기인 Olympia SM3와 비슷합니다. 실제 사용 중인 타자기 수집가에 따르면 구조나 타건감 역시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독일 Wanderer Torpedo 타자기
이 타자기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지만 Wanderer Werke라는 브랜드가 Torpedo사와 합병되어 Torpedo Werke타자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래의 엄청 큰 타자기는 주인공 비즐러가 감청보고서를 쓸 때 사용하는 타자기인데 이 타자기의 글씨체를 보고 반해서 제가 같은 글씨체의 타자기를 직구한 경험이 있습니다
영화 속 비즐러가 타이핑하는 내용이 화면에 나와서 잠시 멈추고 똑같이 타이핑했습니다.
Cubic Typeface (혹은 Techno Typeface, (Olympia 타자기에서는 비슷한 글씨체로 Senatorial Typeface가 있음.)라고 합니다.
영화 속에 주인공 드라이만이 쓰고 연출한 연극이 잠깐 나옵니다. 민간인 사찰이 이루어지던 그 시절 예술적 표현에도 제약이 많았겠지요. 영화 속 드라이만과 친분이 있고 존경받던 한 연출가의 죽음은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시간도 떠오릅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 3장 '일곱 개의 뺨'에서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희곡집을 가지고 어떻게 연극을 할까 걱정하며 보러 갔는데 배우들의 무음 연기에 입모양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융합될 수 없는 체제 속 분단된 나라.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도 인간에 대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멋진 영화라서 안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 4번째 주인공인 타자기도 꼭 눈여겨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