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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언니 Dec 14. 2023

사계절을 닮은 좋아하는 일

사계절 취미 잡화점, 호비클럽으로 오세요.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취미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사계절을 닮았다.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변하면서, 깊어지고, 때로는 사라지다가도 또 반복된다.

얼마 전<사계절 취미 잡화점, 호비클럽으로 오세요_황지혜>를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조금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는 것 말고 더 세세하고 다양한 '좋아 리스트'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부터 내 일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 뚜벅이로 다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연인이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만 사용하고 따듯해질 때 다시 게시할 참이었다.  한 3시쯤, 집에만 있는 아빠에게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아빠는 편하게 내 길을 가이드해줬다.

내가 사는 동네가 이토록 아름다웠나

아름다운 건 알고 있어서 떠나지 못하는 동네였지만 오늘따라 더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30년은 살아온 나의 동네인데 처음 보는 모습들이 많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언덕길이 많아서 힘들게 다녔는데 아빠가 안내해 준 곳들은 평지였다는 점이었다. 매번 전철역까지 가는 15분 동안 오르막길을 오르기 위해 자전거를 가지고 숨이 벅차올랐던 게 필수였는데 아빠와 함께한 한 시간은 숨이 벅차지 않았다. 동네 곳곳을 다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30년을 살아온 나는 모르는. 60년을 살면서 모아 온 아빠만의 노하우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문득 그런 아빠를 보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읽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책은 이렇게 읽는 방법이 있어'라고 쉽게 가이드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큰 내공이 있어야 할까.  그 길을 안내해 주고, 그 길은 즐거운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내가 먼저 알아야 하고, 내가 먼저 즐거워해야 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들을 찾기 위해 시작된 자전거 타기에서 삶의 지혜를 느꼈다. 힘들이지 않고 쉬운 길만 골라서 안내해 준 아빠처럼. 나도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잘 연구해야지. 나는 아빠의 가이드 덕분에 자전거 타는 게 좋아졌다. 마냥 벅차오르지 않는 숨결. 아름다운 자연. 사는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까지. 아빠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좋은 취미가 생겼다.


다음 주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 더 벗어난 곳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이 별로 없고 평지라서 편하게 갈 수 있어. 한 시간 이면 돼. 아빠랑 다녀오자


오늘따라 유난히 귀찮다며 자전거를 타러 가기 싫어했던 아빠는 나를 보며 내일은 다른 곳에 가자고 얘기했다. 알고 보니 아빠는 젊었을 때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알려주는 것에 재미도 느낀 것 같다. 나는 웃으며 좋다고 했다. 다음 주는 아마도 아빠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자전거를 타러 나갈 것 같다. 아빠가 먼저 가봤던 더 많은 동네를 둘러보며 그 길을 함께 하고 싶다.

이전 04화 TV를 보는 아빠의 의자가 반절만큼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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