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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언니 Dec 07. 2023

TV를 보는 아빠의 의자가 반절만큼 가까워졌다.

가녀장의 시대_이슬아

우리 아빠는 시력이 좋지 않다.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아 남은 시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는 하루 종일 TV 앞에서 드라마를 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TV 앞에 있던 의자가 반절만큼 가까워졌다. 원래 보다 반절만큼 시력이 안 좋아졌음을 의미했다.


떨어지는 시력, 딱 그만큼 떨어지는 자존감. 상황은 아빠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고, 젊은 날의 의욕은 안개에 잠긴 듯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네가 씻으러 갈 때 나갈까 봐 무서워.
혼자 외롭잖아


가부장의 삶을 살았던 아빠의 삶이 끝나고 안개에 잠긴 그는 늘 외로웠다. 딸의 방문이 닫히면 열리길 기다렸고, 몰려오는 외로움에 혼자 먹는 식사를 피했다. 나는 그런 아빠가 답답했다. 눈이 나쁘다고 할지라도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60세의 삶을 다시 개척해 나가기를.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하루를 꾸려가길 바랐다.

때로는 그런 아빠를 보며 내가 아빠의 시간을 빌려 알차게 쓰고 되돌려주고 싶었다. 살아가는 것에 의욕을 잃은 아빠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둘이 집에 있을 때 방문이 열려 있는 그 자체로도 안도하는 모습을 보면 죄책감이 들어 집에만 있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아빠가 외로워 한들 아빠 옆에만 있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핵개인의 시대>에서는 이슬아 작가에 대해서 나온다.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으로 자녀가 출판사에 대표가 되어 엄마를 정규직으로, 아빠를 비정규직으로 끌어가며 가녀장으로 삶을 살아가는 내용이다. (제대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지금 나의 상황, 아빠의 상황을 둘러보았을 때.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고 아무도 자신을 써주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녀장이 되는 수만 떠올랐다.


어찌 됐건 가녀장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이 필요했다. 결국은 내가 능력을 키우는 시간과 기간, 나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나를 필요로 하는 아빠의 옆에 언제나 있어줄 수 없다는 결론이다. 멋진 딸이 되어 아빠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나는 더 몰입해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밀고 나가서 '성장 끝에 마침내 성공'을 하거나 '지금 당장 아빠 옆에서 효녀가 되느냐' 이 두 가지의 마음으로 저울을 재던 내가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는 먼 훗날 우리 집에 가녀장이 되겠다는 마음.

그래서 더더욱 주어진 시간을 몰입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아빠의 말이 마음이 아파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테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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