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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Oct 21. 2023

섹시한 사람



나는 표현이 인색한 집에서 자랐다. 무슨 날이나 되어야 쓰는 편지에 고마워요. 사랑해요. 같은 말 쓰는 것도 서로 참 간지러워한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리 만무했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의식도 못 하고 있다가 다른 아이들이 부모들과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뽀뽀하는 모습을 보고야 번뜩 정신이 들었다. 물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구체화해 표현하면 더 좋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노력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을 참으며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큰아이가 두 살일 무렵의 일이다. 아무 말 없이 둘이서 꼭 껴안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어 아이의 눈을 보며 물었다. 


“주노는 엄마 사랑해?”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니 주노는 특유의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괜히 시선을 피했다. 


“몰라!” 


장난스럽게 시작한 질문에 조바심이 더해졌다. 왠지 꼭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몰라? 왜 몰라. 엄마는 주노 사랑하는데? 주노도 엄마 사랑해?” 


주노는 계속 몸을 비비 꼬기만 했고, 나는 장난스럽게 아이를 껴안으며 재촉하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아이의 대답은, 


“사랑해 아니요!”


“인제 그만 물어봐?” 


주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말을 배우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대상과 언어의 관계가 가시적인 경우 즉, 사과, 공룡, 새 같은 것들이야 그 표현의 개념과 이용을 쉽게 익히겠지만, 어른들도 대답하기 힘든 개념의 언어들은 어떨까. 어떤 식으로 아이는 이해하고 있을까.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이 언제 어떻게 쓰는 표현이라고 정립되어 있을까. 자꾸 사랑한다는 표현을 재촉하는 나를 보고 왜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최근에 배운 슬퍼.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누군가 울고 있으면 아이는 (우는 대상이) “슬퍼”라는 말을 한다. 아이에게 ‘슬퍼’라는 표현에는 우는 얼굴 말고 또 어떤 것이 들어있을까. 


아이가 마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날,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감정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뻐, 좋아, 슬퍼, 화가 나.라는 말과 함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신기한 감정들을 배워나가겠지. 좋은 감정이야 무난히 지나가겠지만 나쁜 감정은 겪으면서 힘들고 당황스럽겠지. 사는 거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닌데 특히나 다치고 넘어지고 구르며 배우는, 게다가 그것을 시종일관 평가받는 어린이나 청소년 기간은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기간을 지나온 어른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어른은 아이들을 돕고 가르친다는 핑계로 아이들 대신 선택하고 그들의 선택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한다. 너는 어려서 모르고 나는 어른이니까 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이 연애하면 이성 친구의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사귀는 사람을 데려와 한방에서 함께 자고 다음 날 가족이 함께 모여 아침 식사도 하곤 한다. 더 나아가 나의 시누이는 고3인 딸의 남자친구가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허락했다. 내 아이가 사귀는 사람을 데려와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한다면 나도 역시 허락할 것이다. 다만 함께 사는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도 함께 제시할 것이다. 누군가는 미성년자의 성관계를 대놓고 허락해 주는 것 같아서, 혹은 자식의 내밀한 사정을 눈앞에서 보고 싶지 않아서 허락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눈에 뻔히 보이는 실수를 왜 허락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미성숙하기에, 어른들만큼 경험이 없기에 스스로 결정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결정할 힘이 있다. 그것은 어른들의 선택만큼이나 부족하고 어리석을 수 있지만 어른들만큼이나 진지하다. 어른은 모든 실패와 좌절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 어른조차도 매일 실패하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어른은 아이의 선택을 막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되 최악의 상황만 제한을 통해 방지해 주면 된다. 사랑하는 두 아이가 관계를 맺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집이 아니라면 어디든 사랑의 장소를 찾을 것이다. 못하게 막는 대신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도록,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아이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시누이는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대신 딸의 피임을 책임졌고 서로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삶을 잘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꾸준히 일러주었다. 시조카는 이제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간다. 남자친구는 이곳에 남아 직장을 다닐 것이다. 나는 아이의 선택이 덜 영글었다며 무시하고 자신의 것을 강요하는 대신 옆에서 지켜봐 주고 선택을 응원하며 필요할 때 위로가 되어준 시누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실패나 고난의 연속이다. 그건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마주하는 건강한 태도를 배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출처가 분명하진 않지만 어디선가 배우 양조위가 했다는 말을 읽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섹시하다고. 많이 공감하면서 한때 ‘내가 제일 섹시해.’를 외치고 다녔더랬다. 귀여운 젊은 시절이었다. 아마 이 말은 어디든 도사리고 있는 실패나 좌절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아이들이 많은 시련을 겪었으면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두려워 선택을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면서 여러 의미로 섹시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 그러려면 나부터 섹시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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