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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Oct 21. 2023

낀 사람


부모님은 호주에서 온 이민자들이지만 자신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만났다. 그러니 까 그는 이민 2세대였고, 나의 아이들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과 학자들이었는데 일 때문에 프랑스에 왔다가 알프스산맥의 매력에 빠져 호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집에서는 호주 국적을 가진 부모님 아래서 자라고, 밖에서는 프랑스 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경험한 그 사람. 지금은 두 딸의 아빠가 된 그 사람.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 유자재로 구사하는 그 사람. 프랑스에 살면서 성인이 된 이민 2세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의 아이들이 그 사람처럼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정체성을 가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초면에 국적이라는 꼬리표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이끄는 것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음식 이야기를 하며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 는데 그 사람이 먼저 물었다. 


“네 아이들은 한국어도 프랑스어도 잘해?”
 “응. 첫째 아이는 둘 다 잘하는 편인데 지금은 프랑스어로 말하는 비중이 많이 늘었고, 둘째는 한 국어를 더 잘해.”
 “그렇구나.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만 쓰거든? 백 퍼센트 영어만 써서 아이들이 단어 수준도 꽤 높 고 풍부한데 다 알아들으면서 말은 못 하더라고.” 


그 사람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단순히 2개 국어를 구사하면 유리한 점이 있어서 아쉬운 건지, 아 니면 자신의 부모님 나라의 말을 잘하지 못해서 아쉬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 데리고 호주에 가봤어?” 


나는 아이들이 호주를 자주 방문하면 영어가 훨씬 빨리 늘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질문했다. 그 사람은 자기도 자주 못 가서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5년인가 7년 정도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를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게 이 문장은 굵은 돋움체가 되어 남았지만 그렇다고 국적이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하진 않 


았다. 그저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 나갔다. 


결국 그 사람과 이민 2세대로서 느끼는 감정들에 관해 이야기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의 아이 들이 그 사람처럼 성인이 되어 자기는 프랑스 사람이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내게는 평생 외국어 인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한국어는 두 번째 언어처럼 말할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묘했 다. 가족 모임이라도 하면 나만 혼자서 제2 외국어를 하는 기분으로 앉아 있을까? 나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한국 사람? 프랑스 사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끼인 사람? 


사실 나는 집 밖에서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도 이방인이 된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스트레스받 는 일이 있어 떡볶이를 했는데 ‘아~ 너무 매운데 스트레스 풀린다!’라고 말해도 매운맛과 스트레 스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하고 매운맛과 통각의 관계만 이해하는 님과 떡볶이를 먹을 때, 된장찌 개를 삼 인분 했는데, 함께 한 끼에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삼 일을 먹을 때, 군침 흘리며 




김치볶음밥을 하고 있는데 냄새가 고약하다는 큰아이의 초 치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갑자기 외 국인이 된다. 


나의 아이들은 한국말은 꽤 잘하지만, 한국의 문화는 잘 알지 못한다. 아이들과 나는 전혀 다른 문화의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같은 나라의 문화를 공유한다고 해도 세대가 다르면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나는 유치원에서 흔하게 배우 는 동요나 인기 간식 등을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워 더듬거리며 부르는 노래를 나 는 전혀 모르지만, 님은 금세 알아채며 그 노래에 얽힌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나는 친정엄마 가 직접 만들어주시던 호떡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은 만두나 호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프랑스 아이들이 흔하게 먹는 크렙 crêpe에 대한 추억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길거리나 친 구 집에서 흔하게 먹는 간식은 크렙이나 빵오쇼콜라 Pain au chocolat다. 아이들의 입맛만 봐도 나 는 외로워진다. 


아이들과 한국에 가면 반대의 경우가 생긴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고 외모가 크게 튀 지 않아서 한국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거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한 국 아이들의 나이 서열을 이해하지 못하고 행동하면 건방진 아이라는 오해를 사곤 했다. 


얼마 전 어려서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분을 만났다. 그분은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분이었는데 자신의 정체성은 프랑스인으로 정의된다며 입양된 동양인을 ‘바나나’에 빗댄다고 말씀 하셨다. 겉은 노란색인데 속은 하얗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아이들을 떠올 렸다. 지금은 어려서 그나마 속이 반은 노랗고 반은 하얀데, 시간이 지나면 새하얘질까. 그러면 아주 노란 나는 더 외로워질까. 


나는 아이들에게 노란색을 유지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아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아 마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며 노란색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노란색은 되지 못해도 노란색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만 바란다. 그것만 해도 무척 감사할 것 같 다. 


평생 집 안팎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느 곳에 묻힐까. 지금 생각 같아서는 내가 만든 가족이 있는 프랑스일 것 같은데 왠지 외롭다. 아니다. 어차피 묻히는 곳은 상관없지 뭐. 하늘에서 다 만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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