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긴 이야기.

by 몽아무르




그는 이모의 가족을 초대했다.

평일 이었고 그는 감기에 걸렸으며 마침 상사가 휴가라 일도 엄청 많았다.

하지만 골골 거리면서도 그는 열심히 손님 맞이 준비했더랬다.


우리는 전식으로는 월남쌈, 본식으로는 김밥을 준비했고

이모 가족이 후식으로 오렌지와 조그만한 케익 여러개를 사오셨다.


프랑스의 식사 문화 중 괴로운 것은

아페로 (아페리티프, 식전주)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밥 먹기 전부터 술잔 앞에두고 그 많은 이야기를 이어간 뒤

밥 상에서 또 다시 그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이모 가족은 나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물었다.

- 언제 프랑스에 왔니.

- 여기서 뭐하니.

- 프랑스 오기 전에 불어 할 줄 알았니.

- 프랑스 사람의 스테레오타입이 뭐라고 생각하니.


외국에서 프랑스 인에 대한 이미지는

맨날 소리지르고 싸우는 이미지란다.

그리고 폐쇄적이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 인들은 불평 불만을 정말 잘 한다.

하지만 좋은 쪽으로 보면, 그것은 모두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비롯된것 같기도 하다.

내 권리는 중요하니까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건

무조건 말하고 보는.


내게 한국 분단의 이유와 그르노블과 비슷한 지형의 도시가 있는지도 물었다.

나는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대답했지만

역사, 지리는 취약과목이라...


내가 석사로 영화 공부를 한다니까 반에 외국인이 있냐고도 물으셨다.


나는 딱히 프랑스 음식이 맛있다는 생각은 안하는데,

후식은 정말 맛있는것 같다.

이모 식구들이 사온 조그마한 케익들.

더 먹고 싶었는데 늘어나는 허릿살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에는 참지 말아야지. (응?)


그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베란다에서 다 같이 담배 피고 할 때

안아주고 이마에 뽀뽀해주면서 내가 지루할까봐 무척 신경썼다.


베란다에서 담배 필때도 그와 이모 사이의 공간이 좁아서

안쪽 넓은 공간에 가서 필려고 하니 Reste ici. (여기 있어.) 하면서

자기 옆으로 나를 당겼다.


초반에 그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가장 적응이 안되었던게

어른들 앞에서 안고 쓰다듬고 뽀뽀하는 버릇이었다.

나는 남들앞에서는 가능한 안 만지려고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의 가족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부모님이나 누나 부부가 내 앞에서 서로 안고 가볍게 뽀뽀하는 일도 심심찮았다.

처음에는 눈을 어디다둬야 할지 몰라서 허둥댔지만

서서히 익숙해졌다.



그는 너무 착하고 다정했다.

나는 정말 서른 중반이 되도록 이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그건 또 아니었다.

이제껏 만나본 외국인들,

나와 이성으로 관련이 있던 없던 내가 본 모든 외국 남자들.

내가 본 외국인 커플들.

결론은 사람 사는 건 다 같아서

로맨틱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그랬더랬다.

오히려 여자를 배려한다고 해주는 행동들,

예를들어, 무거운 것 들어주기, 찻길이 곁에 있으면 여자가 안쪽에서 걷게 해주는 것등은

한국 남자들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그가 내게 잘해주면 문득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것이 사라지면 나는 또 괴로워하겠지. 였다.



이모 식구들이 모두들 가고

그는 나를 안아주었다.

아직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더니

나를 휘리릭 돌렸다.


그 : 우리 춤추는 거야?


감기 때문에 아픈 그에게 춤은 그만 추고 어서 자라고 재촉했다.

그는 이를 닦으러 갔고

나는 음악을 끄고 바닥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뒤에서 안아오는 그.


그 : 바닥에 있는거 좋아?

나 : 응.


그러더니 바닥에 누워버리면서 말했다.

'난 이렇게 고요한게 좋아.'


그때가 한참 사람들 떠들고 음악소리 들리고 하다가

모두 떠나고 음악도 없고 한 때라 더 그랬다.

'나도' 라고 내가 대답했다.


아프다면서 잘 생각을 안하는 이 남자를 일으킬까하다가

나도 가슴팍에 기대어 누워버렸다.


나 : 몇시야?

그 : 지금 시간을 알게되면 난 울어버릴지도 몰라.

나 : 왜?

그 : (시계를 보더니) 아. 12시다. 수면시간이 7시간 밖에 안남았어.

나 : 아... 우리 내일 네 고향에 가지?

그 : 응.

나 : 윌리 보러 파리도 가는 거고?

그 : 응. 디즈니 랜드에 가서 공주님이 되는거야. 너는.

나 : 하하하.

그 : 그럼 내가 키스를 해서 너를 깨워줄께.

나 : 그럼 넌 왕자님이네.

그 : 그렇지. 그리고 다음엔 네가 나를 개구리에서 왕자님으로 바꿔줘야해.

나 : 네가 그닥 못생긴 개구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해줄께.

그 : 하지만 왕자님이 없으면 너도 공주님이 못되잫아.

나 : 아. 그렇구나.

그 : 내가 너를 깨우고 성으로 데려가서 아이들을 많이 많이 낳는거야.

나 : 그게 뭐야. 하하하. 몇 명?

그 : 몰라. 근데 가장 좋은 순간은 아이들을 만드는 그 순간이지.

나 : 야 !

그 : 왜. 사실인데. 상상해봐. 피오나공주랑 슈렉이 아기를 만드는...

나 : 그만해 ! 왜 아름다운 동화를 망치는 거야 !


내가 싫어하니까 더 신다서 이야기하는 그.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 : 애들 한테도 그렇게 이야기 해줄거야?

그 : 아니. 당연히 아니지. 그것에 관해서는 학교에서 배울거야.


나는 '일어나 씼어야지?' 라고 말했다.

그리곤 일으켜 주는데 무거운 그를 내가 들어올릴수 있을리가 없었다.


되려 그가 나를 들어올리더니 침실로 밀어 넣었다.


우리는 잠시 안고 가만히 있었다.

어둠. 정적.


그가 말을 꺼냈다.


그 : 내가 좋은 이야기 해줄까?

나 : 응.

그 : Je crois que je t'aime.

나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나 : Tu crois ?

그런 것 같아?


그는 전에 나에게 être amoureux de (사랑에 빠지다, 반하다) 라는 표현을 써서 사랑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따지고보면 이건 두번째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건데, 나는 더 강한 감정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기에는 être amoureux de 보다 Je t'aime이 더 직접적 표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사랑해' 라고 바로 입이 떨어 지지 않아 '그런 것 같아?' 라고 되물었다.


그 : Oui.

응.


나는 입을 열었다.


나 : Moi aussi, je crois que je t'aime.

나도. 나도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나는 Croire (라는 느낌이 들다.) 라는 단어를 똑같이 사용해 주었다.

도저히 '나도 사랑해.' 라고 단정 지어 말할 용기는 없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웠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입에 올리는 단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 C'est vrai ?

진짜야 ?

나 : Oui.

응.


그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뭐랄까. 뭔가 감동하고 말았다.

그건 예전에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는거랑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라 왠지 울 것만 같았다.

나는 되려 흐흐 웃었다.

그랬더니 왜 웃냐고 물어보는 그.


나 : 몰라.

그 : 그냥 혼자 웃은거야?

나 : 행복해서.

그 : 나도.


그리곤 그가 '너 참 멀리서 이제서야 나타났구나.' 하는 류의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이해를 잘 못했다.

'걸어서 온거지.' 라고 말하며 웃길래 그제서야 '아, 내가 한국, 저 멀리서 오느라 오래 걸렸단 이야기를 하는거구나.' 했다.

우리는 한참을 어둠속에 누워서 깔깔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전생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본인이 사무라이였을거라고 말했다.


나 : 사무라이가 좋아. 아니면 지금이 좋아?

그 : 적어도 머리가 날아가 죽지 않은 지금이 낫지 않겠어 ?

나 : 그럼 다음 생애에는 뭐가 되고 싶어?

그 : 모르겠어. 너는?

나 : 나무.

그 : 나무 지루하잖아 ! 움직일 수도 없고, 누가 베어갈 수도 있고, 네 몸에 누가 칼로 하트를 새길수도 있다구!


그러면서 우리는 농담을 지껄였다.


나 : 그럼 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그 : 글쎄. 어쨌든 니가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면, 나도 네 옆에 나무로 태어날거야.


나는 사람들에게 후생에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즐겨한다.

그 질문의 답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현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고 나서 바뀐 점이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후생에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졌다는 것.

언제나 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

하루살이. 나무. 바위.

이것들이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은 본인이 당연히 사람으로 태어날 것을 생각하고 대답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무생물이나 동물 또는 식물을 택했다는 점이다.

유럽 사람들에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이 좋은 걸 왜? 라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불교에서는 가장 덕 없는 삶을 산 사람이 다음생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나는 거라고 말해주면

더 이해를 못한다. 다시 한번, 이 좋은 걸 왜?

지금은 괴롭기는 하지만 사람으로 사는 것의 장점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두번째는 죽고싶다는 생각을 더 이상하지 않는다는 것.

나이든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고

나, 남편, 아이, 나의 가족을 상상하는 건 더 어려웠던 나였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삶에 미련도 없었다.

거의 매일을 죽고싶다. 끝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날 버스 안에서 '죽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고 놀랐더랬다.


그 때와 나의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언제나 삶의 어려움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뀐 것 같다.

항상 긍정적인 그에게 물든 것 같기도 하고

늘 든든하게 곁에서 지켜주려는 그에게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매력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잘 못했었다.

초초한 상황이 되면 날카로워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나를 보면서

그는 내게 말했더랬다.


'나도 아침에 주관해야 하는 미팅있는 날 늦잠 자면

정말 너무 초초하고 스트레스 받아.

하지만 그럼 뭐하겠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데.

나는 그럴땐, 어쨌든 이 모든 건 지나가고 언제나처럼 오늘 밤 나는 집에 돌아가 있을거야. 라고 생각해.

그거면 된거 아니겠어? 너, 소박한 저녁, 포옹. 그거면 됐지.'


그는 아침에 늦잠을 자도

한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늘 하는 아침 의식인

침대에서 포옹 한번, 문 앞에서 포옹 한번도 잊지않고 꼬박꼬박 그것도 서두르지 않고 하고 간다.

나는 그게 늘 신기했다.

어떻게 저런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그의 말이 맞다.

초초하고 날카로워진다고 일이 더 잘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부정의 힘보단 긍정의 힘을 믿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참을 떠들다가

화제가 떨어졌다.


나 : 이제 자야지 ?

그 : 그래야지. 일단 약 먹고, 이 닦고, 너한테 포옹도 하고 잘거야.




언제까지 그가 이렇게 나를 좋아해줄까라는 불안감은 떠나질 않았다.

현재만 생각하고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걸 알면서도

행복할 수록 불안감은 상승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고민하면

스스로 소심해져 관계를 더 망치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좋은 지금만 생각하며 살기로 한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갉아먹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 걸로.


Seize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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