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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May 25. 2022

08. 다정함의 모양

그림책 <아빠, 나한테 물어봐>,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다경아,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종종 범하는 오류가 하나 있는데 바로 부모의 역할을 ‘문제 해결자’로 생각한다는 거야. 부모가 아이의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이상하게 친구나 지인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경청하고 질문하며 답을 주지 않는 공감이 가능하거늘, 그게 아이들 일 일 때는 잘 안 되는 것 같아. 아이는 그저 나의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뿐인데 나는 아이의 울음을 당장 멈춰주고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켜줄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더라. 부모는 옆에서 응원하고 방향만 잡아줄 뿐, 아이의 문제는 아이만 해결할 수 있는 건데 말이야.


얼마 전에 준호가 세수를 하다가 자기는 왜 한쪽 콧구멍이 작냐는 질문을 했어. 유치원 가기 직전이라 무척 바쁜 시간이었는데, 준호는 한쪽 콧구멍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화가 많이 난 상태였어.


“준호는 태어날 때 입술 하고, 요기 코 밑부분 있지? 거기가 이렇게 벌어진 채로 태어났어. 아기 때 벌어진 부분을 당겨서 꿰매는 수술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한쪽 콧구멍이 작아진 거야. 이거 봐. 엄마도 그래. 엄마도 그렇게 태어났고 나중에 수술했거든.”

“난 이거 싫어.”

“왜?”

“보기 안 좋아. 리아도 이렇게 태어났어?”

“아니.”

“왜 나만 달라?”

“그건 그냥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하나의 모습이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준호는 그래도 싫다며 이걸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어. 물론 징징징과 함께 말이야. 나는 리아에게 신발을 신기고 준호에게 어서 신발을 신으라고 재촉하면서 설명을 이어갔어. 얼굴이 다 자란 성인이 되면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커다란 변화는 없을 거라고 말했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준호가 구순열에 대해 언젠가 물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미리 생각해두고 연습을 한 상태였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생각보다 일찍 물을 줄은 몰랐어. 게다가 별일 없어도 정신없는 아침 시간 이라니!


다행히 나도 구순열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 과정이 어떤지 아니까, 엄마도 그런 감정을 느꼈어. 엄마는 이런 과정을 겪었어. 하면서 공감하는 것이 가능했어. 그럴 때마다 주노의 화가 좀 잦아드는 것 같았지만 잠시 뿐이었어. 나는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연설하듯 이어가려고 했어. 구순열은 준호가 가진 특징 중 하나 일 뿐,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키가 작고 누구는 손이 크고 누구는 손이 작은 것처럼 너도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고. 그걸로 너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 없으며, 만약 누군가 그걸로 너를 하대하면 너는 그를 무시하고 멀리하면 되는 거라고. 너를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랑할 시간도 짧다고.


그런데 준호는 첫 문장을 말했을 뿐인데 그다음은 말도 못 하게 하고 당장 콧구멍을 똑같이 해달라고 짜증만 부렸어. 나는 이 처음을 잘 넘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아이가 외모를 콤플렉스로 여기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말이지. 그래서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건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고칠 순 없는지 반복해서 묻는 준호가 조금 답답했어. 그런데 다음날 부모교육을 공부하는 친구가 내게 그러는 거야. 내가 과정을 보지 못하고 너무 결과에 연연했다고. 내가 준호를 위해 준비한 대답은 삼십 년이 넘는 삶을 살면서 깨달은 것들이고 나조차도 어린 시절,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구순열을 부정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준호가 한 번에 내 말에 수긍을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거지. 나는 여기서 아이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과정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 과정은 몇 시간, 혹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런데 네 편지를 받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어. 엄마인 내가 하는 위로나 공감이 전부가 될 순 없을 거라는 것, 준호 주위에 다정함을 건네줄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래야 한다는 것이었어. 이제껏 나는 너무 커다란 책임감을 가지며 살았나 봐. 아이의 삶은 결국 아이가 사는 것이고, 나는 그저 엄마로서 아이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살아내다가 쉬고 싶을 때 편안히, 온전한 자기의 모습으로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네 편지를 보고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되었어.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엄마 말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내가 찾아낸 다정한 책들 한 번 만나볼래?


내가 생각한 다정함에는 세 가지 모습이 있어. 첫 번째는 곁에서 경청하며 함께 있어주는 것이야. 버나드 와버가 글을 쓰고 이수지가 옮기고 그린 <아빠, 나한테 물어봐>를 보면 이런 다정함이 한가득이야. 이 책은 아빠와 아이의 시시콜콜한 대화 내용을 담고 있어. 읽어보면 정말 시시콜콜한데, 내용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말 사이사이에는 사랑과 다정이 가득해. 아빠는 아이의 말을 경청하며 아이의 자리를 잘 지켜주고 아이는 그런 아빠에게 뭐든 이야기하며 아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표현해. 거기에 가을날 풍경을 배경으로 세상의 다정한 순간들을 포착한 이수지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다정과 사랑이 넘치는 책 한 권이 탄생한 것 같아.

출처 : 예스24

두 번째 다정함은 관심을 주는 것이야. 나는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는데, 준호와 내가 읽은 ‘시’에 관한 그림책이 있어. 미카 아처의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이야.

출처 : 예스24


“시는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야.”
다니엘은 거미가 하는 말에 깜짝 놀라 위를 쳐다봤어요.

이 책을 읽었을 때 준호가 만 세 살이었어. 그러니까 ‘시’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를 나이였지. 제목을 읽어주니까 준호가 시가 뭐냐고 물었어. 나는 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답해주었지. 책을 읽고 나니 준호가 다시 물었어.


“엄마 그래서 시가 뭐야?”

“준호 생각에는 뭐 같아?”

“잘 모르겠어.”


나는 책을 다시 훑어보며 말했어.


“이거 봐. 거미는 시가 이렇다고 생각하지? 청설모는 이렇다고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다니엘은 이렇다고 말하네. 엄마 생각에는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그게 시가 되는 것 같은데? 준호는 오늘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있어?”

“아니. 없어.”

“아, 그래?”

“아냐. 있어.”

“뭔데?”

“오늘 공원에서 본 노란 꽃.”

“엄마 준다고 꺾어 온 그 꽃?”

“응.”

“그럼 준호가 ‘오늘 본 예쁜 노란 꽃’이라고 말하면 그게 시가 될 수 있겠네.”


이 날 낮에 준호는 아빠와 같이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왔어. 집에 돌아와 풀밭에서 꺾은 꽃을 내게 건넸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나를 생각해 꽃을 가져온 준호가 귀엽다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내게 준 꽃이 ‘오늘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리고 그걸 나와 나누려고 했던 아이의 마음과 행동을 생각했을 때,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시가 되어버리고 말았어. 마음이 벅찼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려면 그것에 관심을 두고 한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 바라보다 보면 자꾸만 새로운 것이 보이고 그것에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도 생기겠지. 그러다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나만의 눈이 생기는 것 같아. 한눈에 모두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그것만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관심을 두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고 더 많은 것을 보면 포용하는 마음도 더 커질 거라고 믿어. 그렇게 다정함은 다양함을 안을 수 있을 테고.


세 번째 다정함은 존중하는 것이야. 네가 정책에도 다정함이 있을 수 있다고 했잖아. 나도 그 이야기에 동의해. 존중은 양보도, 오지랖도 아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나는 양보와 오지랖에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 같아. 나를 상대보다 우위에 두고 내가 당신을 위해 양보, 즉 희생한다거나, 내가 당신보다 잘 알아서 가르쳐준다는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 반면에 존중에는 인정이 있어.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지. 프랑스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없어. 노약자석도 굳이 따로 만들어 두지 않았지. 물론 노약자를 위한 자리가 있긴 한데 거기에 커다랗게 노약자 석이라는 표시가 있다든지 의자 색깔이 다르다든지 그런 모습은 없어. 자리가 비면 누구든 편하게 앉아. 이런 문화가 가능한 건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프랑스의 노인이나 휠체어 타는 사람들, 혹은 임산부나 유모차를 미는 사람들은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망설이지 않아. 그게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거든. 가령 노약자석에 누가 앉아 있거나 휠체어나 유모차를 놓는 자리에 누가 서있으면 자연스럽게 비켜달라고 부탁해. 왜 거기 앉아 있냐고 화내거나 어이없어하지 않아. 그러면 거기 있던 사람도 미안해하거나 민망해하지 않고 자연스레 자리를 비켜줘. 물론 부탁하기도 전에 자리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많고. 나는 진짜 다정함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해. 누가 누구를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그러면 법이나 정책이 정해주는 수많은 약속에 대한 논쟁이나 저항도 적을 것이고 심지어 그것들 없이도 다양성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나 오늘 너무 진지했어? 하하. 난 가끔 유머를 모르는 네모 같은 내가 부끄러울 때가 있어. 지금이 조금 그렇다! 하지만, 과한 진지함 속에서 나의 다정한 마음이 네게 전해졌기를 바라. 세상이 다정으로 가득 차면 좋겠다!


2022.03.29

다정한 마음 가득 담아,

민영.



글 : 버나드 와버

옮김. 그림 : 이수지

비룡소 | 2015


#대화 #다정 #소박 #사랑 #순수











글. 그림 : 미카 아처

옮김 : 이상희

비룡소 | 2018


#시 #자연 #관찰 #아름다움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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