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육지 사이에 다리가 놓이다
지난 2008년 압해도와 육지 사이에 연육교가 놓이면서 이 곳은 더 이상 섬으로 불리지 않는다. 섬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육지도 아니다. 후자의 연장선 정도로 여겨진 고향은 개통 직후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나 방문객들이 끌고 오는 차량들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볼 것 없이 밋밋한 논과 밭 사이로 난 비좁은 도로를 따라 돌다가 이내 돌아갔다. 그런데 이듬해 가을에 접어들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해루질’이란 레저문화가 여과 없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소개되면서부터다.
어부가 되려면 자격을 갖추어야 했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법자처럼 해안선을 활보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인심을 잃을까 봐 염려하는 이도 있었고 체험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질서 없이 밤만 되면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밤잠을 일찍 청하는 어른들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밤이면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섬마을은 작은 소리에 민감하다. 가끔은 마을 어장으로 설정된 갯벌에 들어가서 제 마음대로 낙지나 소라, 돌게를 잡아오는 무리도 있었다. 노상에서 먹고 쓰레기를 남겨둔 채 자리를 뜨는 이가 많았다. 날이 새도록 주인 잃은 쓰레기는 결국 주민이 치워야 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잡는 사람과 지키는 사람 사이에 잡음이 일어났다. 대화가 통하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스스로 섬 지킴이를 자처하며 갯가를 서성이는 주민이 생겼다. 하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밤이라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주민인지 외지인인지 매번 찾아가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점점 민심이 흉흉해졌다.
마을어장은 조상 대대로 어촌공동체에 소속된 대다수 주민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의식을 바탕으로 가꿔온 공유 공간이었다. 바다는 늘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을 살면서 본능적으로 깨우친 그들은 욕심을 금기시했다. 내가 한 마리 더 잡으면 내일 또 다른 주민이 못 잡는다는 마음 씀씀이는 갯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나눠 잡는 문화였다. 일부 청년들은 많이 잡아오는 날이면 고령의 어른 댁을 찾아 나눠드리기도 했다.
다리가 놓이면서 빈 집에 좀도둑이 들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도로변에 널어둔 볍씨가 없어졌다는 둥 수확한 양파를 망태기에 담다가 해가 져서 밭에 두었는데 다음날 가보니 몇 개가 없어졌다는 둥 말이 이어졌다. 언젠가 청년의 집에도 도둑이 든 적 있다. 부모님과 청년이 어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옛 풍물을 좋아하는 청년에게 할머니가 귀하게 여기던 재봉틀을 선물로 주셨는데 거실에 두었던 것을 도둑맞을 뻔했다. 누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작업 선반과 붙어있어서 뜯어가지 못하고 구겨진 신문지를 덮어 둔 모양이었다. 크게 망가지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몹시 기분이 나빴다.
섬집에 이삿짐을 풀던 날 마을 어른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한 삼촌이 들려주던 말씀을 기억한다. 다리가 놓였으니 집집마다 녹슨 문짝이 한가득 나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코웃음 치며 무슨 말이냐고 묻는 청년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던 삼촌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쉽게 잊어버렸는데 이런 사고가 날 줄이야. 억울했지만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섬 인구가 육천 명을 훌쩍 넘었지만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은 파출소가 고작이었고 근무하는 경찰은 몇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치안 면적이 웬만한 도시에 버금가는데 파출소가 가당키나 하냐며 저 혼자 분통을 터뜨렸다. 마을 회의에 참석해서 마을 주변 도로에 cctv를 설치하는 안건을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육지섬은 부족한 게 많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회 서비스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그 사이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섬주민이 안아야 했다. 목포와 섬을 왕래하는 뱃 시간에 맞출 필요 없이 언제든지 육지를 왕래할 수 있게 되면서 응급환자가 회생할 확률이 높아졌다. 한편 물류 유통이 원활해져서 헐값에 농·수산물을 매집해가던 상인을 대신하여 직거래를 하거나 공판장의 경매에 내는 등 자발적인 농·어민 시장 진출로 소득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잃은 게 더 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섬과 육지를 왕래하는 길이 열리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청년은 육지의 눈과 섬의 눈을 각각 가진 이방인의 입장에서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