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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二) 물. 어부가 되는 길

섬청년에서 청년 어부로 거듭나다

2017.01.02. 아버지와 겨울바다를 누비다. 



섬에서 지낸 지 10 년이 지났다. 먹고사는 일을 염려하여 아버지를 따라 바다일을 하거나 민박을 운영하다가 5 년 전부터 맨손어업을 겸해왔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는 바다에서는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위험이 따르는 특수한 공간이다. 평소 조심성 많던 청년은 믿을 수 있는 건 내 몸뿐 이라며 기계화된 선박과 장비를 멀리하였다. 어장 일을 나갔다가 예기치 못하게 돌풍을 만나기도 했고 선상에서 그물을 정리하다 중심을 잃어 바다에 빠지기도 했다.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한 이후 좀처럼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컸다.


바다에는 육지처럼 보행자나 자동차가 없다. 한편 신호등이나 속도를 문제 삼는 경찰관의 단속도 없어서 어부는 저 스스로 경찰관 역할을 하다가 신호등처럼 서 있기도 해야 한다. 다양한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에 옮겨야 하니 늘 긴장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 운항을 방해하는 해양쓰레기가 곳곳에서 떠다니다 엔진 모터의 스크루를 감을 수 있으니 꼼짝없이 표류하는 신세를 면하려면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굴려야 한다. 청년은 이리저리 시선을 둘 만큼 많은 눈을 갖지 못했다. 일찍이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되는, 실패의 쓴 맛을 여러 번 보았던 터라 늘 한 가지라도 잘 하자는 다짐을 했다. 


언젠가 하루 먹을 반찬을 갯벌에서 마련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며 갯가에 나서는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가 갯벌에서 꾸무럭거리는 낙지를 처음 만났다. 기후위기나 해양쓰레기가 환경을 위협하는 요즘에는 개체수가 줄어들었지만 그 시절엔 밤만 되면 어디서나 쉽게 낙지를 발견했다. 빛을 싫어하는 야행성 생물이라는 점만 인지한 채 낯선 갯벌로 향하는 날을 늘렸다. 물렁물렁하고 밍밍해서 촉감이 좋지 않았던 그 친구들을 어머니는 발견하는 즉시 낚아챘다.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체구가 적어 곧잘 ‘매미 공주’라고 놀리던 청년은 전문가처럼 세련된 솜씨를 뽐내는 모습에 놀라 말을 바꾸었다. 매미 공주에서 ‘낙지 대장님’으로 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첫 한 달간은 대장님께 보고하느라 좀처럼 설렘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2015.06.01.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가  자연에 놓인 자아(自我)를  생각했다.



선박과 장비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오로지 본능적인 직감과 다년간 경험한 지혜로 바다나 갯벌에서 생업을 일구던 섬 어른들. ‘갯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어른을 찾는 날이 늘었다. 오랫동안 터득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기대했던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다만 낙지는 빛을 싫어해서 밤에 주로 활동하니까 밤잠 줄여서 열심히 발품 팔아 보라며 짧은 조언을 해주셨다. 


한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갯벌에 시선을 두었다. 이웃집 삼촌이 바지 장화를 입고 ‘가래’(진득한 갯벌을 파기에 용이한 폭이 좁은 삽)한 자루와 배낭처럼 생긴 ‘조락’(조릿대나 대나무살을 엮거나 이어 만든 바구니로 염분에 강해서 어부들이 곧잘 만들어 쓰던 도구였다)을 등에 짊어지고 갯벌에 나갔다가 뭍으로 올라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걸음을 재촉했다. 인사를 드리고 다가서면 삼촌은 잡아온 낙지나 주꾸미, 소라가 가득 담긴 조락을 쑥스럽게 내보이곤 하였다. 마릿수가 적지 않아 입을 ‘떠억’ 벌리곤 감탄사를 연발하던 청년은 바다를 응시했다.


일찍이 고향에서 해태(김) 양식을 하셨던 아버지는 행정절차를 잘 알고 계셨다. 읍사무소에 가서 맨손어업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섬에 산다고 해서 누구나 어업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며 법이 허용하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충고해주셨다. 이밖에도 지역 수협에 일정 금액의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수협 어판장에 위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이밖에 어민에 대한 다양한 지원 사업이나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섬에 주소를 두고 살아야 함은 기본 요건이었다. 어부로 인정받는 길이 이처럼 험난했을 줄이야.  


읍사무소를 찾아 신청한 지 며칠 뒤 맨손어업 신고필증을 받은 청년은 액자에 끼워 제 방에 곱게 모셨다. 어업을 허락하는 내용의 간결하고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되읽었는지 모른다. 스스로 체득하는 시간을 쌓으며 마을 삼촌처럼 멋진 어부로 거듭나리라 다짐했다. 당최 저 혼자 시작해서 끝을 본 적이 없었던 청년은 요란하게 도구와 장비를 챙겼다. 약수터에서나 쓸 법한 말통에 노끈을 매달았다. 고된 노동 강도와 수준 높은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가래 낙지잡이’는  홰 낙지 잡이를 충분히 한 다음에 도전하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초심을 잃지 말기로 했다. 큰 건전지가 들어가는 플래시를 찾다가 아버지께 여쭤보니 신고필증 신청하러 갔던 날에 맞춰 발광 정도가 무시무시한 손전등을 주문했다며 기다리라 하셨다. 늘 무심하게 말씀하시지만 뒤로는 남모르게 마음을 내어주시던 분. “가족이니까”라며 당연하게 여기곤 하였던 무정함을 탓하다 내미는 손에 다가섰다. 아들의 도전을 반갑게 응원하는 아버지와 건강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걱정으로 말미암아 만감이 교차했다. 


짙은 어둠을 뒤 짚어 쓴 밤바다가 거칠게 철썩이며 말을 걸어왔다. “오라.” “나에게 오라.” “청년, 그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그대.” “나에게 오라.” 심장이 급하게 뛰었다. 물때에 맞춰 채비를 하였다. 혼잣말로 바다에게 화답했다. “그럼세. 인자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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