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앞으로 하루 왕복 여덟 번 기차가 지나간다. 주말에는 더 길어지고 색깔도 화려해진다. 어릴 적에 기차를 구경하던 마음이 아직 덜 자랐는지 기차가 지나가면 사진을 찍는다. 바쁘면 고개라도 들고, 기분이 좋으면 손까지 흔든다.
고향 동네는 삼면이 산이고 앞은 저수지가 있었다. 혹자는 "다람쥐와 토끼와 발맞춰 노는 산골"이라고 했다.
기차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광주근교에 있는 외가와 고모집은 가까웠다. 우리 집에서는 세 시간 정도 걸렸지만.
방학이면 층층시하 대가족의 어려움을 아시고 외할머니와 고모가 우리들을 보내라고 하셔서 숙제할 것들을 챙겨 한 바퀴 돌고 왔다. 버스를 갈아타고 걸어서 찾아가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모집 건너로 목포행 열차가 지나갔다. 슬레이트를 인 고모집은 반듯했고, 다락방도 있었다. 한사코 사다리 같은 곳을 아슬아슬 딛고 올라가 사촌들이 생활하는 다락방을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집 바로 앞으로 수로가 있어서 군데군데 뚫린 네모난 구멍으로 흐르는 물도 신기했다. 고모집 큰오빠가 잠을 쫓으려고 밤마다 목욕해 가며 그곳에서 공부해 고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저 건너로 보이는 기차였다.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덜컹이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 형제들은 우르르 몰려 나가 신기한 그 기차를 구경했다.
하나, 둘, 셋... 누구랄 것도 없이 딱히,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을 부지런히 세곤 했다.
밥을 먹다가, 숙제를 하다가, 정신없이 놀다가 행여 한 대라도 놓치면 큰일 난다는 듯 몰려나가 구경하는 그 꼴을 고모와 사촌들은 웃으면서 구경했다.
농장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도 무심결에 하나, 둘... 세고 있다. 짧아서 아쉽다.
"한가해지면 기차 타고 여행 가자."
이 약속은 이번 가을에는 지켜지려나...
가을도 짧아서 아쉬운 계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