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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an 05. 2024

블루베리 트위스트

블루베리 나무도 겨울에는 잠을 자야 한다. 선진 농가에서 알려 준 방법은 물을 듬뿍 주고 나서 모터의 물을 빼고 연결 부위를 분리하라는 것이었다. 사방 1m 사각 화분에 물을 주면 스프링클러가 뱅글뱅글 돌면서 물이 분사된다. 화분을 보면 물이 닿지 않은 부분이 보였다. 나무의 기둥이 막혀 있어 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스틱을 반대 방향으로 옮겨 보기도 하고, 높이를 조절해보기도 했다. 수압을 조금 더 세게 하려고 라인들의 배수관을 막고 조절해 봐도 물이 닿지 않은 부분이 보였다. 물을 틀어 놓고 물이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아뿔싸!!! 물길을 막고 있는 것은 나무의 튼튼한 기둥이 아니라 스프링 쿨러의 물이 나가는 높이의 약해 보이는 나뭇잎들이었다.



삶이 축적될수록 강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둘째를 키우면서 저절로 터득되었다. 둘째의 자잘한 말썽에 엄마가 언성을 높이면, 둘째는 감정이 더 폭발되어 진정하지 못한다. 제 마음을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니 본인은 또 얼마나 답답할 것인지. 예전엔 몰랐었다. 그래서 나도 수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이제는 엄마 경력이 아주 많이 늘었다. 엄마말을 듣게 하려면

"천천히 여러 번, 조용히 반복해서"

그래야 통한다.



말수 적은 남편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잊을 만하면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내 뜻을 관철하며 살고 있다. 성격 급한 나도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 물길을 막았던 나뭇잎들을 제거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소통을 방해하고 있던 습관들을 제거하는 것 같았다.



블루베리 나무는 종류에 따라 스스로 낙엽을 떨구기도 하고 상록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우리가 키우는 나무들은 모두 잎을 달고 있다. 풀 뽑기를 마치고 한쉼 쉬며, 물을 충분히 줘서 한 달가량 단수를 하려던 우리는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종일 나뭇잎을 제거하느라 허리를 구부리고 작업했더니 너무 힘들다.



화분에 재배하는 하우스의 큰 불을 끄고, 작은 하우스로 향했다. 지름 60Cm 부직포 화분에 재배하는 블루베리는 생각보다 키가 잘 자라지 않았다. 한 여름이 아니라 온도관리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쪽 화분에는 풀이 잘 안 나서 다행이네요."

"보이는 대로 뽑아줘서 그런가."



여기도 마지막 물을 주려고 물을 틀었다. 당연히 화분이 더 적으니 평소에 물의 양도 적게 주었었다. 오랜만에 풀을 뽑으려고 몇 개 뽑았는데 화분 속에 마른 흙들이 가득했다. 한 차례 더 물을 줘도 마찬가지다.



아차차!!! 이쪽 하우스는 물이 화분 속까지  스며들지 않고 위로 그냥 흘러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아! 풀이 안 나오는 것도, 나무가 안 자라는 것도 모두 물이 부족해서였네!"

"어떻게 이제야, 그것도 올해 마지막 물을 주면서 알 수 있었을까요?"

"맨날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도 화분 속을 파 볼 생각은 안 해 보고 당연히 물이 들어가겠지 생각하고..."

"기술센터 소장님이 흙을 파보라고 알려 주셨는데..."



우리는 뿌리가 다칠까 봐 조심하느라 흙을 파 볼 생각을 못했다. 농장 여기저기로 바빠서 정신만 없었지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지 겁이 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바쁜 척 이리저리 뛰어만 다녔지, 돌아보면 실수 투성이었다. 이렇게 또 블루베리 나무에게 한수 배우며 우리도 조금씩 흙 속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다.



"나무야! 정말 미안하다. 무식한 주인들을 만나서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그래도 새해 첫날에 블루베리 나무를 살렸으니 다행이네요."

"내일부터 나무를 심은 지 2년 차가 되는데, 아직도 초보딱지 떼려면 멀었네요."



반성인지 넋두리 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며, 호스로 화분마다 흙 속까지 주입구를 넣어서 화분의 바닥까지 적시도록 한나절을 물을 주었다.



인간관계에서도 늘 살펴보고 곁에 있다고,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모른 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조금 더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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