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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an 12. 2024

상추를 닮은 사람

"다 귀찮다. 조용히 넘어가자."



엄마의 팔순 잔치를 준비하는 오 남매를 엄마는 한사코 말리셨다. 오 남매도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은 한 살 차이시다. 아버지가 한 살 더 많으셔서 회갑, 칠순, 팔순을 모두 챙겨 드렸다. 엄마는 "작년에 아버지 잔치 했는데..."라고 극구사양 하셨던 것이다.



사실상 아버지는 현재까지도 바깥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정작 종갓집을 지키고 오 남매를 키우며 한평생 헌신과 인내로 사신 분은 엄마다. 그런 존경스러운 삶을 살아오신 엄마의 팔순마저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오 남매의 간절함을 막상 허락하신 엄마는, 저녁 약속에 앞서 점심 식사를 서울에서 오시는 이모 두 분과 외삼촌 두 분을 시골집으로 오시게 해서 직접 대접하기로 다.



그 역시 종갓집 맏며느리인 큰올케와 내가 아침 일찍 동원되어 점심상을 차렸다. 엄마는 친정 동생들을 초대한 음식 준비에 각별히 더 마음을 쓰셨다. 외삼촌들과 이모들, 엄마가 정말 행복해하셔서 흐뭇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상추 좀 뜯어와라. 이모들 가져가시라고 드리게."



엄마의 말을 들은 이모들은 점심을 드리고 물린 밥상을 치우느라 분주한 우리를 대신해 직접 상추를 뜯으러  가셨다.



행사는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었다. 오신 분들이 차례차례 한 마디씩 하시는데 외가 분들이 자꾸 우셨다.



엄마는 큰외삼촌 다음으로 태어나서 남동생 셋과 여동생 둘을 엄마처럼 돌보셨다고 한다. 외할머니께서 몸이 약해 외할머니 병시중과 가족 건사를 다 하다 시집을 다.



큰 이모가 벌써 울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저와 제 여동생은  머리를 길게 길렀어요. 언니가 아침마다 예쁘게 땋아주고 묶어주고 그랬는데, 시집가면서 단발로 잘라주고 갔어요. 그 뒤로는 머리를 길러보지 못했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오 남매를 키우실 때도 두발을 직접 관리해 주셨다. 미용 기계 일체를 구비해서 세 아들과 두 딸, 할머니의 머리까지 직접 손질하셨다.



엄마는 텃밭의 상추를 닮았다. 어디서나 꼭 필요한 사람. 그런 부지런하고 속 깊은 엄마가 기력이 없다고 힘들어한다.



"움직이기 싫다."라고 말한다. 얼마 전부터 시골집에 갈 때마다 설거지 통에 그전 끼니에 드신 그릇들이 담겨 있다. 다음 끼니에 겨우 씻어서 드시는 눈치다.



설거지를 마치고 음식쓰레기 통을 거름에 쏟고 씻어 놓으면 엄청 좋아하신다. 비우고 와야 되는데 몸이 무거워서 못 비웠다고 다.



농장의 텃밭 사진을 보여 드렸더니 상추를 보고 웃으신다.



"우리 하우스에는 상추가 조금밖에 없어서 다시 씨를 넣어 놓았다."

"상추 그만큼이면 많지 않아요? 계속 뜯어 드셔도 될 텐데..."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도 엄마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모들이 상추 뜯을지를 모르고 뚝뚝 분질러서 가져가버렸더라."

"진짜요? 촌에서 자랐는데 상추를 왜 그랬을까요?"

"서울서 오래 살다 보니 잊어버렸나 보더라."



상추는 엄마께 소용 가치가 크다. 엄마도 아버지도 상추를 잘 드시기 때문에 끼니마다 겉절이나 쌈으로 밥상에 올리기 좋은 찬거리다. 상추는 텃밭에 없어서는 안 될 채소다.



상추 싹이 나오기 전 까기 드시라고 우리 농장에 있는 텃밭의 상추를 뜯고, 모종으로 옮겨 심으시라고 뿌리째 뽑아다 드렸다. 하우스에 심어 드리겠다고 했더니 "이 까짓게 무슨 일이냐! 바쁜데 어서 가라!"라고 손사래를 친다.



우리 농장의 현재 텃밭이 있는 비닐하우스에는 블루베리 나무를 더 채워 넣고, 텃밭은 비가림용으로 다시 자그맣게 마련하려고 한다.



비닐하우스 속이라 아직까지 야채들이 초록을 유지하고 있다. 무는 간식으로 뽑아서 깎아 먹으면 시원하고 단맛이 났다. 무랑 비트도 강추위에 얼기 전에 수확해서 깍두기와 초절임을 만들어야겠다. 분홍빛 비트절임을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텃밭을 봄이 오기 전까지 작은 하우스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도 남았다.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의 봄 색깔이 달라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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