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오늘의 시 한 편 (45).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유병록
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겨울이 와도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봄을 반성하지 않기로 해요
봄이에요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
금방 흘러가고 말 봄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
짧디짧은 봄
우리 그저 바라보기로 해요
그뿐이라면
이번 봄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금방 흘러 갈 봄’이라, ‘처음이 아닌 봄’, ‘짧디짧은 봄’ 이기에 큰 다짐도 하지 말자고 한다. 이전이 결심들도 모두 흘려 보내지않았느냐는 자책도, 지난 봄을 돌아보지 말자는 놓아버림도 모두 이 말을 하기 위한 포석은 아닐까?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내가 당신을 바라보면 어떤 봄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나쁘지 않은 봄을 넘길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도 당신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겨를도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예정이 봄의 시작인 입춘이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10년 만의 강추위를 뚫고도 봄은 서서히 내 생에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