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9. 고진감래]
올해는 작년보다 수확을 앞당겨 보겠다고 난방 관리를 더 철저히 했었다. 2월부터 창을 닫아 주었고, 꽃이 피기 시작해서 열매로 변하는 동안에는 난방을 실시했다. 5월 10일경에 수확이 가능할까 기대했었는데 여태 초록색에서 전혀 변하지 않아 걱정했다.
드디어 오늘, 익은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반가워서 울컥, 눈물이 솟아났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우여곡절이 응결된 열매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블루베리의 보랏빛이 내 몸과 마음에 생긴 멍자국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멍이 달콤하다는 것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다. 블루베리 열매들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고, 열심히 크면서 익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정말 예쁘고 기특한 블루베리 열매들이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바깥쪽이라 어제나 그제쯤부터 익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안쪽부터 이음줄을 고정해 나가다가 사흘 만에 바깥쪽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올해 유난히 비가 자주 와서 열매가 익는 시간이 더 걸리는 거라고 짐작된다. 내일부터는 맑아진다고 하니, 블루베리 열매들도 더 커지면서 잘 익어가리라 믿는다.
[25.5.10. 우후지실]
블루베리 하우스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을 열흘 동안 마무리했다. 일단, 올해는 1단과 2단까지만 마무리기로 했다. 3단까지 고정구는 설치해 놓았다. 내년에 줄을 설치할 계획인데, 처진 가지들을 올려주다 보니, 키가 큰 품종이 3단까지 설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케이블 타일로 기둥에 1단과 2단에만 묶는데 1,000개 이상이 소요되었다. 오늘은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처져 있는 가지들을 부드러운 양말끈으로 묶어주는 마무리 작업을 했다. 반대쪽으로 쏠린 가지들을 잡아서 햇볕이 잘 들도록 펼쳤다가 묶으니, 바람도 잘 통하고 햇볕도 잘 들어갈 것 같아서 보기도 좋다.
비 온 뒤라서 바람이 강하다. 햇살이 비치기는 해도 약한 빛이다. 비닐하우스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천창을 열었다. 해를 만난 블루베리들이 골고루 잘 익어가면 좋겠다.
블루베리 가지 유인선 설치를 마치고 가지를 올려 주고 있다. 가끔 열매가 투두둑 투두둑 떨어져 화들짝 놀라곤 한다. 다 키워 놓고, 익기를 기다리면 되어서 떨어진 열매를 보면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
투두둑! 묵직한 가지가 끊어진다. 열매만 한두 알 떨어져도 마음이 아픈데 열매가 한 봉오리 달려 있는 가지가 끊어졌으니, "오~~ 메"라는 소리가 옆지기와 내 입에서 동시에 처져 나온다. 옆지기가 추켜든 블루베리 가지가 부케처럼 한 손 가득이다.
여기저기서 떨어진 블루베리들이 아까워서 사진으로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 몇 개의 사진을 찍었지만,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끝까지 잘 관리하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블루베리 나무를 위한 작업이니 나무들도 작은 아픔은 견뎌 주리라 믿는다.
[25.5.11. 소탐대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열매들의 색깔이 바뀌고 있었다. 사흘 만에 떠오른 해님이 반가워 블루베리 하우스도 창을 활짝 열었다.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아래로 내려온 가지들을 유인선에 묶어주는 작업을 오늘까지 해 주었고, 키가 큰 품종이 3단까지 유인선을 만들어 3단에 고정해 주었다.
담장에 고개를 내밀고 해맞이를 하는 해바라기처럼 블루베리 나무도 유인선 너머 햇살을 온몸에 받으려고 한껏 발돋움을 하는 모양새가 참 예쁘다. 방향을 잡아 주느라 우두둑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나무와 열매에 골고루 해가 들도록 나무를 위해서 힘들여서 하는 일인데 가끔, 우리의 손놀림에 따라 부딪친 열매들이 떨어지는 일이 생겨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작은 것을 잃지 않으려다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작업을 이어갔다.
[25.5.13. 금상첨화]
블루베리 큰 하우스 지지대를 세워 주는 작업을 12일 만에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작은 하우스로 눈길이 갔다.
올해 첫 수확하는 나무들이 사는 곳이다. 열매가 많지는 않은데, 통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열매를 매단 가지들이 무겁다고 아래로 내려온다. 쉼터 일을 시작해 볼까 생각했는데 다시, 작은 하우스에서의 작업이 이틀이 걸렸다.
큰 하우스에서 연습해서 작은 하우스 지지대를 세우는 일은 수월할 줄 알았다. 천장 부분의 가로대가 없어서 드릴로 땅을 파내고 파이프를 세운 후, 사다리를 타고 망치로 마무리했다. 옆지기가 땀을 비 오듯 한나절 작업을 하고 나서 블루베리 나무들보다 더 아래로 쓰러져 내렸다.
50cm 길이로 자른 목각으로 1단과 2단을 재서 줄을 연결하고, 기둥마다 케이블 타일로 묶어주는 작업까지 이틀 만에 마쳤다. 작은 하우스의 블루베리 나무들을 세워주어서 반듯하게 서고, 시원한 고속도로가 생겼다. 작은 하우스의 블루베리까지 모양새를 갖추니, 무언가 미진했던 마음도 정리된 것 같아 후련했다. 몸은 무거워도 마음이 가벼운 것이 더 다행이다.
낮에는 그동안 너무 바빠서 어질러져 있던 작업장과 쉼터 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두 시간 넘게 정리를 했건만, 별로 표시는 나지도 않았다. 쓰레기봉투는 몇 개가 나왔으므로 그만큼 깨끗해졌다고 믿는다.
빨아 쓰던 장갑과 손가락 끝이 닳았지만, 흙 묻히지 않는 작업을 하려고 남겨 두었던 장갑 등 낡고 허름한 것들을 모두 버렸다. 아끼는 것도 좋은데, 왠지 궁색 맞게 살고 싶지 않다. 아끼며 사는 게 평생 습관이지만, 흙 묻히며 일하면서까지 헐렁한 것들을 걸치고 싶지 않다.
가끔, 농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불쌍한 모습으로 일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농사일이 힘들지만, 모든 과정이 고되지만은 않다. 땀 흘리며 식물과 마주하는 보람과 기쁨이 분명히 크다. 즐겁고 산뜻한 마음과 복장으로 일도 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보였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예쁜 장갑 안 사주면 일 안 할 거예요."
나 혼자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앞뒤 맥락 없이 듣는 옆지기가 무슨 말일가 싶어서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 "그러세요."라고 대답한다.
[25.5.15. 지기지우]
우리가 기르는 블루베리 품종 중에 꽃술을 따 줘야 하는 것이 있다. 열매의 크기도 굵고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아 효자 품종이다.
한 가지 단점은 열매 끝 모양이 오각형 꽃처럼 생겨서 꽃술을 물고 있다는 것이다. 노지재배라면 하지 않아도 될 작업이 비닐하우스 재배에서는 꽃술을 따 줘야 하는 것이다. 100% 따 줘야 하는 건 아니고, 가끔 남겨진 꽃술을 따주면 된다. 그대로 두면 열매에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고, 지저분해 보이기도 한다.
연일 농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친구가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왔다. 큰 노동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걱정하고 있던 꽃술 따주기 작업을 도와달라고 했다.
옆지기의 친구 부인인 그는 내가 결혼한 후로 만났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 정이 많이 들었다. 속 깊고 진실한 친구라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손 빠르고 진중한 친구이기에 조심조심 작업을 잘해나갔다.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이라서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옛날을 추억하는 시간이었다.
마음은 나누고 땀 흘리며 노동력을 나누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주겠다고 하는 마음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지난 연초에는 나뭇잎 따주기를 도와주기도 했었고, 블루베리 화분의 풀 뽑기도 도와주었던 친구의 마음이 따뜻하다. 그 친구 덕분에 혼자서 했으면 닷새쯤 걸렸을 꽃술 따주기 작업을 이틀 만에 마쳤다. 농원에서 매일 일하는 나는 힘들지 않게 넘어갔지만, 친구가 몸살이 나지 않았을까 걱정되고, 쉴 시간에 농원으로 달려와 중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사랑하는 친구! 복 많이 받으시고 앞길이 꽃처럼 환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