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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의 하루

by 민휴

[25.5.17. 우리 곁에 있는 천사]


복숭아밭 관수관비 호스를 땅에 묻지 못하고 두둑에 펼쳐 놓은 곳이 있었다. 밭의 가장자리로 농기계들이 드나들기가 어려워서 두둑을 직각으로 파 놓은 곳. 다시 포클레인으로 수관 묻을 부분을 파면 뿌리가 다칠까 봐 수관을 펼쳐 놓고 제초 매트로 덮기로 했다. 그대로 두면, 물이 나오는 부분으로 풀이 들어가서 수관을 막기 때문에 제초 매트로 덮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큰 숙제인데, 옆지기 친구 두 분이 오셔서 깔끔하게 처리해 주셨다. 농사를 짓고 있다고, 농원을 가꾸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척 궁금해한다. 어디에서 어떤 품목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일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 어떤 일을 해 보았다는 말이 따라 나온다. 부모님이 무슨 농사를 하셨는지를 알게 되고, 부모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던 농촌 출신의 또래들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농사일을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가 낑낑대면서 하루 걸릴 일을 처리해 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다. 사방에서 천사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25.5.17. 감자밭]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다. 감자꽃을 따 줘야 알맹이가 굵어진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감자 줄기 끝마다 꽃이 막 피어나려는 어린 봉오리들이 달려 있다. 어제 내린 비로 감자밭이 세수한 것처럼 말끔하고 환하다. 감자밭 옆으로 지석강 강물도 불어나서 흙탕물을 품고 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세차게 흐르고 있다. 소리만으로도 시원해서 진다는 걸 알게 된다.



감자꽃은 예쁘지만, 오늘까지만 보기로 한다. 가장자리 양쪽으로 감자를 향해 풀들이 덤벼들고 있어서 양쪽 두둑에 있는 풀들을 뽑아냈다. 고랑에 있는 풀도 매야 해서 혼자서 두 시간 가까이 작업했다.



작년에 감자를 파 보았더니 풀줄기 들에 걸린 감자가 움푹 패어 있는 것들이 있었다. 잘 죽지 않는 쇠뜨기가 주범인데, 쑥도 뿌리가 세다. 지금은 쇠뜨기, 명아주와 공중대, 띠풀, 이질풀, 괭이밥, 광대나물 등이 보인다.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풀이 점령한 땅을 찾으려면, 풀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감자들을 살려 줘야 해서 풀들의 원망소리를 참아 넘기기로 했다.





[25.5.18. 복숭아]


예성산에는 오동나무 아래로 아카시아가 그 아래쪽에는 찔레꽃이 피었다. 강물 위로 층층이 꽃들이 계단처럼 피어있다. 어릴 적에는 아카시아 꽃잎도 따 먹었고, 찔레순도 꺾어 먹었다. 특히,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따서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파리를 떼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몽실몽실 피어나는 풍성한 아카시아랑 한 송이를 한 송이 또렷하면서도 여린 찔레꽃이 만발했다.



영농교육에서 복숭아나무에 치명적인 꽃나무가 아카시아와 찔레라는 것을 알았다. 탄저균이나 여러 균들이 아카시아와 찔레를 좋아해서 그 근처에 과실수가 있으면 위험하다. 복숭아밭 수로 쪽 너머로 찔레가 퍼져 있다. 경사가 심해서 우리가 조치할 방법이 없다.



환한 꽃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복숭아 농사에는 방해꾼이라는 생각에 어떻게 처리할까를 궁리 중이다. 복숭아밭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겠다.




[25.5.19. 농원 주변]


농원이 궁금한 지인들이나, 귀농하면서 블루베리를 키우고 싶은 분들, 블루베리 나무 키우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려는 분들이 강사님과 함께 견학 오시는 일이 가끔 있다.




내일이 그런 날이다. 손님이 온다고 하면 마당을 쓸고 청소를 하는 것처럼, 진입로에 돋아난 풀을 뽑고, 블루베리 하우스도 정리하고, 통로에 떨어진 낙엽과 마른 꽃술 등을 쓸어 주었다. 청소라는 일은 왜 그런 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 품을 들여서 일을 해도 표가 안 난다. 그렇지만 소홀히 하면 또 금방 표가 나서 깨끗하지 않고 흐트러지게 된다. 우리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좋은 인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아귀가 아플 만큼 부지런히 풀을 뽑았다.



오전에 감자밭두둑과 대추나무 주변까지 제초 작업을 했다. 옆지기는 예초기를 짊어지고 작업을 했는데, 기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손으로 두 시간 넘게 뽑았던 곳을 반 시간 만에 말쑥하게 처리했다. 그나마 내가 정리해 놓은 뒤끝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옆지지가 예초기를 돌리는 사이에 올해 마지막으로 채취할 쑥 잎을 뜯었다. 데쳐 말려서 미숫가루를 만들지, 삶아서 절편을 만들지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 친정에서 캐 온 머위가 봄에는 적게 보였는데, 살아있는 것들이 더 많이 있어서 방해받지 말고 넓게 퍼지라고 주변에 있는 풀도 정리해 주었다.



아무리 아끼고 좋아하는 쑥이라지만, 머위가 자랄 곳에서는 정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신선초와 들깻잎이 자라는 감자밭 머리 쪽도 풀을 뽑았다. 사방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이 깨끗하게 되었다. 오전에 채취한 쑥을 챙겨서 퇴근하는 중이다. 쑥을 손질해야 해서 집에 도착해도 아직 퇴근을 한 것이 아니다.





[25.5.20. 복숭아]



쉼터 만들기를 하다가 방문하신 기술센터 소장님을 따라 복숭아밭으로 향했다. 복숭아 적과 작업과 새순을 잘라주는 순집기 작업을 급하게 해야겠다고 알려주셨다. 수정이 안된 것도 많지만, 달린 열매도 많아서 적과 작업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새순이 많이 자라서 솎아줘야 할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이 매실 같기도 하고, 청포도 같기도 하다. 많이 달린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서 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는 순간, 아찔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또 밀려오고 있다. 바닥에 떨쳐진 복숭아 열매가 발에 밟힌다. 선택받지 못한 열매들이 할 일을 다하고 했다는 듯이 땅바닥에서 쉬고 있는 것 같다.



블루베리 수확이 바로 코앞으로 닥쳐왔는데 어찌 일을 헤쳐나갈지 걱정이다.








[25.5.21. 복숭아]



어제 견학 오신 분들이 깨끗하게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화순군 농업기술센터 상담소장님께서 함께 오셔서 블루베리 기르는 방법과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견학을 오신 분들은 우리보다 더 넓은 농원에서 많은 양의 나무를 기르고 있는 분들이었다. 충북에서 멀리까지 견학을 오셔서,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너무 좋았다.



베테랑 농부님들이 직접 우리 농원까지 오셔서 가르쳐 주신 것들을 잘 메모해 두었다. 그분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셔서 우리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도 여유가 좀 생기면, 조금 더 배우기 위해서 견학도 다니고 학생처럼 배우는 시간도 더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러운 시간이었다.



수확을 앞두고 있어서 살짝살짝 익은 블루베리들이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수줍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또 이렇게 정신없는 한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새로운 한 주도 즐겁고 힘차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한 주의 마감식 같은 연재글을 마무리하면서 힘을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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