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물로 채워지는 날들

by 민휴


포도송이처럼 방울방울 매달린 블루베리 송이를 왼손으로 들어 올려 눈을 맞춘다. 여러 개의 눈들이 나처럼 반갑게 인사한다. 수줍어 눈 맞춤이 더딘 열매는 더 자라도록 둔다. 한 송이에서 굵은 두세 개를 골라서 따고 조심히 내려놓는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서 나무 아래에 달린 열매를 찾으면, 굵은 열매들이 보인다. 좋은 것은 그런 겸손을 갖춰야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썼다, 고맙다고, 예쁘다"



요새 내가 늘상 속삭이는 말이다. 팔려나가는 블루베리들이 맛있다고 주문을 다시 했을 때, 선물 받으신 분들이 맛있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 정말 고맙고 행복하다. 하루 서너 시간의 잠만을 보름째 이어가고 있지만, 괴력이 생겨서 버텨 나간다. 블루베리를 먹은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확시기를 힘들다고 버티지 못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나의 노고를 걱정해 주는 지인들에게 위와 같이 말하며 나에게 위안을 주는 시기다. 지금의 시기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노심초사 온 정성을 다해 쉼 없이 달려온 일 년이었다. 보랏빛 열매는 우리의 노고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농원일기를 쓸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매일 글쓰기 하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 미안한 상황이다. 이런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혼자서 수확과 선별,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친구가 며칠을 도와주었고, 동생과 언니도 근무를 접고 농원으로 달려와 주었다.



일 년을 보낸 농부의 삶을 돌아보는 시점에서 바로 전의 공정은 블루베리 나무에 열매가 무거워지면서 아래로 구부러진 줄기 때문에 통로가 없어졌다. 중간에 파이프를 세워서 통로를 확보하는 일은 정말 눈물겹게 힘든 일이었다. 그 작업을 하면서도 복숭아밭의 적과작업과 블루베리 하우스의 제초작업, 쉼터 만들기 작업 등의 밀린 일들을 짊어진 막막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알찬 모습으로 찾아와 준 블루베리 열매들을 따면서 내 몸과 마음에 생긴 멍들이 보랏빛 열매로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다 보니, 땀방울이 흘러서 눈으로 들어오고, 따갑고 쓰린 눈물이 흐른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쓰린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흘러가기도 한다.



나름, 녹록지 않은 삶을 애쓰며 무사히 건너 왔다는 자부심도 있다. 수도 없는 눈물들이 나를 거쳐 갔겠지만, 이토록이나 공들인 눈물도 있다. 삶은 이렇게 진한 눈물로 채워진다는 것을 실감하는 날들이다. 눈물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보랏빛 열매들과 눈 맞춤을 통해 내 마음도 영글어간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