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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산빛!

by 민휴


농원으로 출근하는 길 산자락에 오동꽃이 많이 보였다. 오동꽃 필 무렵이구나! 오동꽃이 예쁜 것은 그 자유분방함이 아닐까 싶다. 다소곳이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제 마음대로 피는 야생화. 녹음이 짙어가는 건너편 산에 또렷한 보라색이 눈에 띤다. 새가 날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잘못 심긴 꽃 같기도 하다. 개성 강한 아이처럼 톡톡 튀며 빛나는 오동나무 덕분에 산빛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라색은 참 연두와 초록과 잘 어울리는 색깔이다.



[25.5.4.] 블루베리 나무의 지지대를 세워주는 작업 5일째다. T자 고정핀에 피스를 박는 작업 이틀째다. 큰 드릴로 땅을 팔 때는 온몸으로 드릴을 눌러서 줘야 해서 옆지기가 엄청 힘들어했다. 어제오늘은 가벼운 드릴로 천장 쪽에 피스를 고정해야 한다.



삼단 사다리를 양쪽에 배치하고 이동하며 작업하는데 사다리를 옮기고 부품들을 들어주는 보조 역할이 둘째와 나의 일이다. 직접 드릴로 피스를 고정해 보려고 했는데 둥근 철봉에 피스를 대고 드릴을 돌리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키가 작아서 못할 거라고 옆지기가 놀려서 납작한 벽돌을 사다리를 위에 올려서 보란 듯이 피스 고정 작업을 했다. 손바닥을 몇 번 찔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드릴로 피스를 고정해 보니 옆지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줄은 내가 직접 작업했으니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오늘은 파이프와 피스 고정작업을 마치고 내일은 지지줄을 연결하는 작업까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25.5.5.] 블루베리 화분 간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지지대를 설치 작업 엿새째다. 수평자를 이용해 최대한 직각으로 세우느라 고생한 보람이 보인다. 규모를 갖춰가는 하우스 내부에 들어서면 보기만 해도 뿌듯해진다. 파이프 피스를 고정과 이음줄 연결고리 설치, 이음줄까지 설치하려면 내일까지 소요될 것 같다.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엿새째 계속되는 작업을 인해 피로도 겹쳤다. 그래도 날씨가 흐려서 하우스 속에서 작업해도 어제처럼 덥지는 않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블루베리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을 하면서 화분에 보이는 풀도 함께 뽑고 있다. 풀들도 올라오는 시기가 따로 있어서 봄이 시작되면 풀의 소생도 다시 시작된다. 2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풀은 괭이밥이다. 클로버처럼 생겨서 땅속으로 넓게 뿌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뿌리째 뽑기가 어렵고, 금방 끊어져서 손을 땅속으로 깊숙하게 넣어 제거한다. 힘들여 뽑아도 금방 또 자라나서 화분의 주인 행세를 하려 든다.



지금부터는 명아주, 공중대 등이 차례로 올라온다. 물론, 괭이밥은 기본값으로 사철 올라온다고 보면 된다. 굵어지면 단단해져서 지팡이를 만든다는 명아주가 나무 곁에서 크게 자라고 있다. 커다란 명아주는 기념사진 촬영 후, 장렬하게 뽑혀 나갔다. 현재까지 올해의 가장 큰 풀이었다.



명아주 어린 풀들이 많이 보였고, 공중대도 보이기 시작했다. 풀들도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만, 나는 또 블루베리 나무를 키워야 하므로, 풀은 제 일을 하고, 나는 또 내 일을 해야 하리~ 내 눈에 띄지 말고 잘 살아내기를 바란다.






[25.5.6.] 블루베리 지지대를 설치작업 일주일째다. 오늘까지 최종 마무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 더 필요하게 되었다. 오전까지 이음줄 연결고리를 설치했고, 오후부터 이름줄 연결을 했는데 생각보다 더뎌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음줄을 고정해서 처진 나무들을 2단까지 올리고 나니, 보이지 않는 통로가 훤하게 보인다. 일을 해보니 알겠다. 열매가 생기기 전에 이음줄 연결까지 모두 마쳤어야 한다는 것을... 통로를 드나들며, 이음줄을 고정해서 나무를 올리며 열매들이 떨어졌다. 이렇게 몸소 체험을 통해서 깨닫는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복숭아나무를 살펴보고 온 옆지기가 서둘러서 적과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작업을 하면서는 또 얼마나 후회를 할는지~~~ 나무들 살리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데~ 후회는 왜 쌓이는지 모르겠다~ ㅠㅠ




[25.5.7.] 복숭아나무에 병해충 예방약을 해야 해서 준비하고 나섰다. 우리 농원이 길의 끝에 있어서 우회 도로가 없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낚시를 하려는 사람들이 농장으로 들어오곤 한다. 낮에는 길이 없다고 매번 말하지만, 밤에는 어두워서 위험할까 봐 통로 중간에 트럭을 세워 둔다.



SS(speed spray 농업용 방제기)기가 지나가야 해서 트럭 키를 넣어두는 장에 정해진 보관함을 열었는데,

트럭 키가 없다. 겉옷의 주머니에도 없고, 바람이 일기 전에 약을 하려고 새벽부터 서둘렀는데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아무래도 집에 트럭 키를 놓고 온 모양이다.



보조석에 잘 닫히지 않았던 생각이 나서, 손으로 열어 보았더니 다행히 문이 열린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트럭을 밀자고 한다. 옆지기는 내가 천하장사인 줄 아나 보다. 독기를 품고, 온 힘을 다 쓰면서 밀었더니, 어라! 이게 되는구나!!! 옆지기도 나도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에 어렵사리 복숭아밭까지 왔다. 우리는 SS기로 수월하게 작업을 했는데, 옆의 밭에서는 세 사람이 동원되어 호스를 뻗쳐 약을 했다. 혼자서 180m 줄을 풀고 걷으며 약을 했던 눈물겨운 날들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다섯 시간씩 약을 하는 일이 농사의 모든 공정을 중에서 제일 힘들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고가의 SS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지금은 한 시간 반이면, 그 어렵던 작업이 끝난다. SS기에 앉아서 고랑을 돌기만 하면 되어서 겁내지 않아도 된다. 오늘 바람도 잔잔하고 날씨도 선선하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방제복을 벗은 옆지기가 말했다.


"트럭 키, 내가 방제복 속에 입은 바지 주머니에 있네!"


내가 못살아!!!


삶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과 맞닥뜨릴 때가 가끔씩 있어서 심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25.5.8.]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이음줄 고정 작업 중이다. 이음줄을 연결하고 아래로 처져 있는 나무들을 1단과 2단으로 올려준다. 반듯하게 위로 자라서 열매를 매달고 있는 가지가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 가지도 있다.


이음줄 곁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도 어려워서 양말 끈으로 묶어줘야 할 가지도 있다.



어버이날을 맞아, 나는 어떤 아이였을지 생각해 본다. 느지막이 농부가 되어 아직도 농사 전문가인 엄마께

이런저런 지도를 받고 있으니 아직 덜 자란 아이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우리들 곁에 계시는 것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굽은 엄마의 허리도 이음줄로 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점심에 장어구이를 사드리기로 해서 친정으로 가는 길이다. 덕분에 우리도 행복한 쉼을 즐길 수 있겠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하며~♡




* 꽃말이 기다림, 고상, 숨겨진 아름다움이라는 오동꽃이 우리네 어머니를 닮은 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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