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27. 눈으로 떠나는 여행]
벌교로 향하는 기차에 마음을 실어 보낸다~ 꽃도 좋지만, 연두로 초록으로~ 여러 가지 색으로 올라오는 나무의 이파리가 이토록이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 된다. 앞산이 꽉꽉 차오르고 있어서 어느 날에는 꽉 찬 나무들이 견디지 못하고 산 바깥으로 튕겨져 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산이 나이고, 나무들이 내가 가진 갖가지 감정들이라고 생각할 때, 내 마음속에 예쁘고 좋은 감정들을 모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심코 하는 말들이 빽빽한 숲에서 나무가 튕겨져 나오듯이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면 안 되니까.
여태 진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손을 멈추고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나왔다. 마침, 초록빛 연둣빛 그 사이를 뚫고 기차가 지나길래 내 마음도 실어 보낸다~ 마음이라도 한 바퀴 휘~ 휘~ 돌아오면 튕겨져 나오려던 말들이 다소곳 해지려나?
[25.4.20. 이토록 초록초록]
농원 주변이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서는 초록색 은행잎이 퍼지면서 하늘 배경을 채워가는 모습이 황홀하다. 매일 아침 농원에 도착해서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나뭇잎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은 내 마음도 푸르게 자라나는 것 같다.
은행나무 아래는 초록 바람이 불고, 강물은 산빛을 드리워 초록빛이다. 블루베리 하우스도 초록으로 꽉꽉 채워지고 있다. 꽃을 따주기 시작한 지 두 주 정도 지나니, 지금은 열매가 된 알갱이들은 솎아주고 있다.
블루베리 나무, 초록의 정령들을 매만지며 봄을 다듬는 것 같은 서툰 맥락을 선 긋기 해 본다. 초록이 대세인 봄날이다. 햇볕이 쨍쨍이다가 잠시, 구름 속에 숨었다. 딱, 이만큼의 시원함이면 좋겠다. 은행나무 아래를 벗어나 블루베리 하우스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25.4.27. 복숭아밭 관수관비시설]
숙원사업 하나를 해결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갖고 퇴근한다. 이틀간 예초작업, 사흘간 수로 파내기, 이틀간 덮기를 했어도 덮는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공정의 80%는 완성한 것이라며 옆지기는 흐뭇해한다.
포클레인 임대가 주말에 선 예약이 많아서 우리는 이틀을 쉬고 월요일에 쓰기로 했다. 그런데 비상이 걸렸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월요일에 포클레인으로 꼭 해야 할 작업이 생긴 것이다. 옆지기는 수로를 덮는 작업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으니, 수작업으로 덮어보자고 한다.
원시적으로 일하는 것 정말 싫은데... 경사진 곳이라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덮는 작업을 했다. 두 사람이 한나절을 작업했더니 끝이 났다. 허리도 어깨도 무릎도 아프지만, 제일 좋은 것은 작업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업을 할 때마다 아니, 세상을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엄마는 나보다 더 힘드셨겠지?'라는 생각을 하면 내 힘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엄마는 바깥일이 더 중요한 아빠를 대신해 온갖 농사일을 전담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서서 일하겠다고 서두르는 남편도 없이 혼자서 얼마나 서러우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뾰로통해지려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25. 4.28.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열매가 커가면서 나무가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너무 심하게 구부러지면 등 면에서 순이 자라서 수확을 마친 가지가 원래대로 세워지면, 새로 나온 순들이 가운데를 나무의 가운데 부분을 채워서 통풍이 잘 안 되고, 햇볕도 들지 않아서 나무의 전체적인 생육에 방해가 된다.
급선무는 나무를 빨리 세워주는 것이다. 지난달에 잘라왔던 파이프를 6m 간격으로 세우고 있다. 드릴로 땅을 파서 파이프를 꼽고, 위의 철봉에 고정하는 작업하고 있다.
드릴로 땅을 파내고 파이프를 세우는데, 전기 드릴을 온몸으로 누르며 땅을 팠다. 내가 하는 것은 아니고, 옆지기가 고생하고 있다. 앞으로도 사흘 정도는 꼼짝없이 옆지기 보조로 파이프와 씨름을 해야 할 것 같다.
농협 자재센터에서 이음 부분의 철골들을 구입했는데, 평소에 잘 못 보았던 모양이라 신기했다. 파이프를 세워서 와이어로 가로줄을 이어서 쇠 파이프에 고정해야 한다. 농자재 판매센터를 여러 곳 다니면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가는 곳마다 딴 세상처럼 새롭고 신기한 물건들이 참 많다. 농사지으면서 필요한 물품들도 많고, 편리한 장비들을 이용하면, 노동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손으로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신기한 농자재가 오면 직접 해보고 싶어 한다. 남편은 사용법을 알려주며 슬쩍 넘겨주기도 하는데 땅 파는 드릴은 안 준다. 기계가 힘이 세서 제압을 못하면 사람이 날아간다는 믿기지 않는 말을 하면서~ ㅠㅠ
[25.5.1. 블루베리 하우스]
블루베리 밭에서 파이프 세우는 작업이 벌써, 나흘째다. 하루가 다르게 아래로 내려오는 나뭇가지들이다. 열매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파이프를 세우는 공정을 진행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도 사흘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기둥을 파고 바로 기둥을 세우던 남편은 기둥을 팔 곳을 표시하는 작업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전체 하우스의 기둥을 세울 곳을 드릴로 뚫을 부분을 표시해야겠다고 한다.
나는 파이프를 세워서 위쪽 봉에 고정하려면 'T자 고정핀'이 필요한데, 사다리를 타고 고정핀을 끼우는 작업을 했다. 32mm 100개, 25mm 280개가 들어갔다. 총 380개를 끼웠다. 기둥이 세워져 있는 곳을 제외하면 사다리를 300번 이상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결론이다. 아이고 무릎이야!!!
내일은 기둥을 세울 부분을 파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 같다. 오늘을 둘째가 큰 힘이 되었다. 엄마 곁을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해 주었다. 사실은 키가 큰 둘째에게 사다리에 올라가 고정핀을 끼우는 일을 해 보라고 했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내가 직접 했다. 옆에서 고정핀을 들어주기만 해도 수월했다.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오 남매도 자라면서 늘 엄마일을 거들곤 했다. 어릴 적에는 그랬었다. 농번기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당연하게 들로 밭으로 부모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했었다. 벼 베기, 보리베기 등은 학교에서도 노력동원이라고 일을 하러 다녔으니, 지금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엄청 놀랄 것 같다. 둘째가 우리와 함께 있어서 일의 집중도가 더 높았다. 이렇게 농원의 봄날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