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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꽁무니

by 민휴


소임을 다한 가을의 꽁무니가 사라졌다. 새벽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더니, 어제는 빛고을에도 첫눈이 내렸다. 올해 마지막 가을을 붙잡고 씨름했던 기록들을 적기로 한다. 쉼터 만들기 때문에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매일 농장으로 출근해 해가 질 때까지 일하며 보냈지만, 하루가 다르게 낙엽을 떨어뜨리고 빈가지로 변해가는 은행나무를 보면 가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을은 늘 그랬다. 연말을 앞두고, 활동하고 있는 문학모임들의 행사와 사적 모임들도 있어서 정신없이 지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좋았지만 나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에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간을 붙잡고 싶어 애타는 마음을 외면하고 10월이 넘어가면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대로 작별식도 못한 가을에게 나 혼자 '가을, 또 만나'라고 인사를 전해 본다.



블루베리 하우스가 영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벽 기온이 영하 5도라는 예보에 보온커튼을 치기로 했다.

모터에 물을 빼지 않아서 급수 펌프들이 걱정되었다. 쉼터 만들기에 전념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쉼터 만들기 작업을 하느라 계획했던 것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귀가하기가 어중간해 좀 늦더라도 끝마치기로 했다. 사위는 어둠에 싸였고, 밖에 묶여 있던 지니는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고 컹컹거렸다. 시각은 6시 반이다. 너무 어두워서 모터를 손볼 시간이 없어 보온커튼을 치기로 한 것이다.






밤, 보온커튼 설치 중이다. 정말 어둡다. 블루베리 나무들이 숙면을 취하며 제대로 휴식기를 보낼 것 같다.

컴컴한 밤하늘에 달과 별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보온커튼이 천장을 닫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다음날 아침, 온도계를 살펴보니, 바깥 기온보다 8도 이상 높은 기온을 유지해 주었다. 비닐창까지 닫아 준 효과였다.







[복숭아 밭 : 25.11.28.]



복숭아나무에 유기질 비료를 뿌렸다. 늦가을에 뿌려서 겨울 동안 휴식하며 잘 먹으라는 밥이다. 억센 풀이 많아서 부드러운 풀인 "헤어리비치" 종자를 신청해서 40kg을 뿌려 준 뒤에 유기질 비료를 뿌렸다.



녹비작물(토끼풀, 자운영, 헤어리비치 등)은 토양의 질소를 고정해 토양 비옥도 향상해 주는 효과가 있어서 친환경 재배법이다. 연초에 면사무소에 신청했다가 받은 귀한 씨앗이었다. 풀도 부드러운데, 꽃도 예쁘게 피는 풀이라서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휴가 온 큰아들이 비료포대를 옮기고 뿌려주는 일을 함께해서 이틀 만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올해는 성목에 한 포, 유목에 두 포씩 총 240포를 뿌려 주었다. 형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둘째도 옮기는 일이나 빈 포대를 치우는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했다. 옆지기가 허리 협착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던 늦가을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콩타작 : 25.12.1~]



타닥타닥, 토도독토도독~ 콩대를 널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콩들이 튀어나오는 소리다. 콩이 깍지에 오래 있으면, 검은콩이 희게 변한다고 빨리 콩 타작을 하라고 최 회장님이 재촉했다.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하우스 한쪽에 널어 두었다. 분량이 작년에 추수한 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굵기는 더 굵어 보인다. 두 차례 두드려 주었다가 한 알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 줄기 한 줄기 점검해 가며 타작 중이다. 검정콩들 사이에 빨간색들이 보여서 언제 팥씨가 섞여 있었었나 걱정했는데, 최 회장님께 여쭤 봤더니, 덜 익은 콩이 색깔이 그렇게 변한다고 알려 준다.



매일 밥에 넣어 먹고, 특히, 여름에 구수한 콩물로 많이 활용하는 귀한 검정콩. 고맙다. 차암 고맙다. 가을강이 맑고 깊어 간다.






[텃밭에서 : 25.12.3.]



자그마한 씨앗들이 싹이 터 올랐다. 열무는 기세 좋게 초록으로 무성해졌다. 하트 모양 싹들이 사라지면서 큰 잎으로 변해가고 있다. 적로메인 상추도 올라오고 있는데, 시금치는 드문드문 나온다. 최 회장님의 "시금치는 원래 늦게 나오니까 조금 더 기다려 봐라."라는 말씀대로 기다려 보기로 한다. 이걸로 끝인지, 대기만성으로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인지의 상황은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늘 용기를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풀인 줄 알았던 아욱은 씨앗이 떨어져서 새로 나와서 연중 먹을 수 있는 국거리 재료가 되었다. 올여름 내내 상추를 먹게 해 주었던 자리에서는 떨어진 씨앗에서 다시 상추가 올라오고 있다. 대파 두어 포기를 나눠서 심어 놓았는데, 대파도 잘 살고 있다. 고추도 서리를 피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 속이라 아직까지 살아 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한순간에 죽어버리기 때문에 고추와 잎을 따야겠다.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나, 발전해 나가는 나의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오늘은 5년 전에 내가 살았던 결과이고, 오늘 내가 사는 모습은 5년 후의 내 모습을 결정한다고 한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할 이유다. 수많은 사랑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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