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협착 때문에 오래 고생을 했다. 병원에 가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엄두를 못 내고 참으며 농원일을 이어갔다. 두 주전에 농원에 손님이 온다기에 급하게 청소를 하다가 허리에 무리가 왔는지 움직이기조차 어려울 만큼 통증이 심했다. 그날은 또 찜질을 해가며 참아 보았지만, 다음날도 나아지지 않아서 급기야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았다. 몇 차례 주사를 맞으며 통증이 완화되었다. 조금 더 치료해야 한다고 했는데, 병원에 가지 못할 상황이 또 생겼다.
남편이 허리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 약을 처방받아먹은 것이 6개월이 넘었다. 어떤 약이든 장복하면 신장에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기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아침에 먹는 혈압약, 고지혈약, 위장약에 정형외과 약을 함께 먹으니 약이 총 여덟 알이었다. 아침에 그렇게 약을 먹으면 머리가 멍하고 기운이 없다고 오전에는 겨우 농장에 출근해서 지니 산책시켜 주고 쉬어야 했다. 11시쯤 되면 멍한 기운이 차츰 사라져서 오전 일을 좀 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정형외과에서는 시술이나 주사요법도 큰 효과가 없으니 약처방을 좀 약하게 해 주겠다고 했단다.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고 걱정했더니 몸에 붙이면 일주일정도 효과가 있다는 패치를 처방해 주었다고 받아왔다. 저녁에 어깨 아래쪽 오른팔에 패치를 붙이고 잤는데, 다음날 아침에 너무 어지럽다며 움직이지 못했다. 바로 패치를 떼어 냈는데도 종일 어지러워서 농원에 출근을 못했다. 그날 밤에는 낮에 끓여 먹였던 죽까지 토하고, 입맛이 없다고 잠만 잤다. 잠이 계속 온다는 것도 걱정되었다.
피부에 약기운이 침투되어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거라고 추측은 되었다. 남편은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며 응급실이나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자고 해도 괜찮다고 누워만 있다. 젊어서부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이 들어 큰 병을 얻을까 걱정이 되었고, 요새 정형외과 약 탓인지 머리가 개운치 않다는 말도 자주 했고, 깜빡깜빡 잊어 먹는 일도 빈번해서 둘이 경쟁하듯 놀리곤 했었다.
남편은 하루를 그렇게 누워서 쉬더니 허리는 좀 나아졌다고 한다. 남편이 며칠 아파서 기운을 못 차리고 있어서 내 병원은 생각도 못했고,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남편이 일어나면서 내가 기운이 다 빠졌다.
피부가 특이체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패치를 처방해 준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의사도 아니라서 벌에 쏘여 고생한 것과 피부 자체가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연관 짓지 못했다. 은행이나 옻닭에도 약간 민감한데 그런 것도 짐작을 못했다. 파스 알레르기는 내 담당인데 이젠, 남편에게도 파스주의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날이 추웠다. 서둘러 농장에서 퇴근해 광주에 들어섰는데 휴대전화에 아빠가 번호가 떴다.
"엄마 눈에 뭐가 들어갔는데, 네가 와야겠다."
무슨 티끌이 들어갔을까? 얼마나 힘드시면 호출을 하셨나 생각이 들었다. 차를 돌려 친정집으로 향하면서 검색해 보니,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인공눈물을 넣으면 빠질 수가 있다고 되어 있어서 전화로 알려 드렸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엄마가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누워계시다 일어나 앉으셨다.
양쪽 눈이 퍼렇게 멍이 들고, 왼쪽 눈두덩이 심하게 부어있고 눈을 뜨지 못하신다.
"엄마, 왜 이러신 거예요? 언제부터 이러고 계셨어요? 왜 연락을 안 하셨어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질문이 쏟아내며 엄마를 끌어안았다.
"빨리, 응급실 가십시다."
외출하려고 현관에서 나오다 힘이 없어서 시멘트 토방에 엎어지시며 계단 난간 쪽에 눈두덩이를 다치셨는데,
자식들한테 이야기하면 놀랄까 봐,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어서 그냥 참고 있었다고 한다. 그 전날밤에도, 그날 아침에도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차로 이동하면서도 엄마 말씀이 끊기면 불안해서 "엄마!", "엄마!"하고 불렀다.
응급실은 그야말로 응급처치만 될 것 같다. 하필, 크리스마스라 안과를 포함한 외래 진료과들은 쉰다. 전문안과가 있으면 안과검진을 먼저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검색을 하는데 거의 다 휴무일이라고 적혀있다. 진료 중이라고 적혀있는 곳도 전화를 하면 받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으로 열 군데 훨씬 넘게 전화를 하던 중에 상무지구 큰 안과가 근무였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다행히 시신경은 다치지 않았는데, 각막 부분이 부어 있고, 상처가 있어서 통증이 있다고 하시며 약처방을 해준다. 안와골절과 두뇌골절이 있을 수 있으니 필히, 두뇌 CT를 찍어야 한다고 알려줘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CT상에도 큰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듣고야 그나마 안심이었다.
처방받은 약이 여섯 가지에다 멍자국 치료 약까지 일곱 가지 약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시는 엄마가 혼자 바르기 어려우실 것 같아 며칠째 친정집에 들락거리고 있다. 천만다행인 것은 엄마가 계속 말씀을 하신다는 거였다. 벌써, 여러 번 들은 이야기들이었지만 계속 맞장구를 치며 들어드렸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추임새를 넣으면서.
엄마의 인생이야기, 소설로 쓰고 싶은 그 아픈 이야기들을 또 가슴에 새긴다. 팬더곰처럼 거무스레 눈주위에 든 멍은 약을 발라서 치료하면 될 것이다. 그 보다 더 깊은 마음속에 든 멍도 살풀이를 하듯 말로 되풀이 하면서 조금씩 옅어졌으면 좋겠다. 엄마 가슴에 든 멍이 내 가슴으로 옮겨오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엄마의 아픔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