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땡"을 해 주었으면

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 2025) 중 「어느 밤」을

by 민휴


어느 밤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친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어느 날, 놀이터에 놓여 있는 킥보드를 타 본다. 자유와 속도를 느껴보고 싶었을 것. 함께 사는 사람과 분리되고 싶어서 산책을 나선 밤. 다시 킥보드와 마주한다. 한 번 두 번 타 보다가 아예, 자기가 주인인 양 자기 집 가까운 곳으로 옮겨 놓는다.



일은 점점 커져서 몇 번 더 킥보드를 타다가 어느 밤에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된다. 그제야 킥보드에 그려진 거북이 그림이 떠오른다. 킥보드는 천천히 타는 것이라는 교훈을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자정을 넘은 시간. 사위는 고요하다. 불이 켜진 집이 한 채 있지만, 그마저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불이 꺼지고, 설상가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갈 수도 없이 누워있는 상황에서 몸은 점점 추워지고 구원이 될 수 있을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남편과 만나서 결혼하게 된 이야기. 여동생과 종교단체로 자기를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그래서 고아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사연. 남편은 결혼하자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는 가족이 많으니까 나눠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그 많은 가족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초들이 일일이 나열되지는 않지만, 아무하고도 친하지 않다는 말로 대변된다.



남편은 노동 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후부터 고약하게 바뀌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관계는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이렇게 밤이 깊어 가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주인공을 구해준다. 청년은 독서실에서 밤새 공부를 하는데, 이날은 비가 내려서 독서실을 나왔다가 우연히 사고자를 발견한 것이다.



119가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주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가 나의 얼굴에 맞을까 봐 손바닥을 펴서 가려주는 이 다정함은 또 뭘까.



어릴 때 여동생이 죽고 희망을 잃었다고 말하는 청년. 5년 사귀던 여자친구와 싸우지도 않고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자, 사랑하지 않고도 평생 사는 사람도 많다고 말해 준다. 청년은 고시공부를 한다고 독서실을 다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주인공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친구들과 얼음땡 놀이를 했는데 아무도 ‘땡’을 안 해 줘서 오래 서 있었다고 말한다. 그날부터 딸과 얼음땡 놀이를 많이 해 줬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도배일을 하는 남편을 돕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을 때, 딸이 ‘땡’을 해 주지 않아서 소파에서 종일 쉴 수 있었다는 뭉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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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다정다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비를 맞으면서도 도란도란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춥지 않았을 시간이 부럽게 다가온다. 가까운 사람들과 깊은 속내를 나눌 상대가 없어서 처음 만난 사고자와 구원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은 킥보드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줄 것을 부탁한다.



구급차가 오자 청년이 말했다.

“땡”



주인공이 말한다.

“자네도 땡”




윤성희 작가의 작품에 주된 주제가 위로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의 표제작인 「날마다 만우절」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마음을 건드리는 감동이 담긴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마음에 숨겨진 어떤 것을 흔들어서 눈물짓게 하는 것. 그런 카타르시스를 경험함으로써,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윤성희 작가는 문학이 주는 효용적 가치를 더 높여준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음이 되고 싶다.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 있지만, 모두 밀쳐주고 얼음이 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니,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얼음’으로 치환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얼음일 테니까.


누군가 나의 슬픔으로 가득 찬 마음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땡’을 외쳐 준다면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유시민 작가님은 말했다. 인간은 누구도 다른 사람이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그 말에 힘입어 스스로 외쳐 본다.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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