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의 첫 피드백

by Motivator

입사 후 한주가 지났을 즈음 팀장님은 나를 부르셨다.


" 자료 보느라 바쁘죠?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어느 정도 히스토리 파악이 되었으면 과장님 생각을 한번 보고서로 받아보고 싶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 그리고 어떻게 이것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네요."


" 네 말씀 주신 것처럼 저도 제 생각을 한번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한번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해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합시다. 당장 급한 거는 아니니까 다른 급한 업무 있음 먼저 처리하시고요."


이곳에 와서 내가 처음 부여받은 업무이자 나를 뽑아준 사람에게 내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인상. 그것은 바로 첫 업무에서 모두 결판이 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난 결코 가볍게 이 업무를 진행할 수 없기에 많은 고민과 시간을 투여하여 온전한 내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경험했던 리더들 역시 업무에 있어서는 베테랑 들이셨다. 그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만족스러운 성과들을 보이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마시라. 내 자랑이 아니다. 그만큼 까다로운 리더들과 치열하게 일하며 단련된, '일 근육'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 여러 번 읽어보면서 팀장님과의 첫 미팅을 준비해 나갔다. 내가 작성하는 첫 보고서에 많은 관심이 있으셨는지 팀장님은 자리를 이동하실 때마다 내 모니터를 자주 관찰하셨다.


옆의 동료 직원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팀장님이 과장님 모니터를 은근히 자주 보고 지나가시네요. 저도 다 느껴질 정도예요~"

그래 관심이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훨씬 좋은 것 아니겠는가~ 난 팀장님과의 첫 미팅을 그렇게 잘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기다리던 첫 미팅의 날, 난 이제 나의 생각을 팀장님께 전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설명을 시작했다. 보고를 수차례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 느낌이 있지 않은가? 뭔가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고, 계속 노트북에 뭔가를 끄적이는 느낌말이다. 난 뭔가 잘 못되고 있구나 분위기를 감지했다.


아무튼 난 첫 보고를 잘 마무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팀장님의 피드백이었다. 내가 이 회사에서 받은 첫 피드백인 만큼 긴장도 되고 또 궁금하기도 했다.


" 네 잘 들었어요. 전체의 내용을 한 가지의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뭐가 될까요? 목적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보이지가 않네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보이는데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잘 안 보여서요"


이게 무슨 말일까. 이미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다 설명을 드렸는데... 안 보인다고? 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처음 나에게 피드백을 해주신 말씀이니 난 침착하게 대답했다.


" 네 팀장님 제가 설명이 길었었나 보네요. 앞부분에 보시면 현황 분석을 통한 문제들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들이 적혀 있습니다. 다시 한번 설명을 드려볼까요?"


" 음... 네 그렇죠 근데 왜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 정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제게 파일을 보내보시겠어요? "


난 머릿속이 하얗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구나.... 몇 번을 검토하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내가 부족했던 것일까? 팀장님은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시는 분인 걸까?


" 여기 색상을 이걸로 바꿔주시고, 제 일위에 목적, 이라고 적으시고 목적을 쓰시죠."

이 말과 동시에 내가 작성한 보고서 위에 뭔가를 계속 끄적이셨다.


"제가 적은 파일 다시 보내드릴게요 아마 수정에 참고가 되실 거예요"


그렇게 나의 첫 미팅은 머릿속이 하얗게 샌 채로 끝이 났다. 멍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가장 중요한 보고서에 담긴 내 의견에 대한 팀장님의 생각은 듣지도 못한 채, 온통 슬라이드의 구성과 배치에 대한 피드백만 받았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팀장님의 피드백에서 내가 다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색상의 적용과 목적만 보고서 위로 올리고 배치만 다시 하면 되는 건가?


애당초 미팅을 요청하신 이유는 분명 내 의견을 토대로 대화를 나눠보자고 하셨는데, 미팅의 자리에서는 내 의견은 1도 등장하지 못했다.


"아직 대화할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하신 건가...."


고민이 많아진 나는 팀장님의 의견이 담긴 파일을 갖고 예전 팀장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 보니 미팅 이후, 이전 상사를 찾아갔던 이유를 되짚어보면 내가 생각했던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확인을 받고도 싶었던 마음이 컸었다.


그만큼 내 고민과 노력이 많이 담긴 첫 보고서였기에 허탈감과 실망감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 상사분은 내용을 쭉 보시고 난 후


"우선 나에게 찾아오기 전 팀장님께 한번 더 찾아가서 물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 내용을 봤는데 난 아주 잘 보이고, 또 핵심을 잘 짚어낸 것 같아 보인다.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보이고, 왜 필요한지도 잘 보이고~ 사람마다 뭐 이해하는 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배치나 구성은 바꾸면 되는 거고. 그보다 중요한 건 네가 왜 내용에 대한 질문은 안 했는지 궁금하네?"


"그러게요.... 제가 왜 내용에 대해서는 질문을 안 했을까요? 그게 제일 중요한데."


"질문도 잘하는 사람이 이야기만 듣고 나왔다는 게 난 좀 이해가 안 되고, 가서 궁금한 걸 다 물어봐.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팀장에게 물어봐야지. 내용에는 문제가 없어 보여, 잘 정리되어있고, 그러니 가서 본인의 생각에 대한 의견을 직접 물어보면 대화가 풀릴 것 같다. 우선 수정하라고 한 건 하고"


예전 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

'그래 도대체 왜 내 의견에는 아무런 피드백을 안 한 걸까?'

나는 제일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회의실을 나왔던 것이었다. 리더와의 대화가 제일 중요하고 지금까지 내가 잘해온 부분이었는데 그것을 안 하고 나오다니, 어쩌면 팀장님도 질문을 기다리고 계셨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 미팅을 준비하면서 내 의견에 대한 팀장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질문들을 몇 가지 정리하기 시작했다. 입사 전 만남에서의 5가지 질문에 대한 답도 아직 받지 못했기에 걱정도 되었지만 말이다.ㅎㅎ


긴장되었던 첫 미팅,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리더의 피드백'이다. 나 역시 리더들의 피드백들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드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리더들은 찾기 힘들다.

그날의 회의실 공기를 복기하며, 나는 나만의 '리더십 오답노트'를 펼쳐 들었다.


1. 본질(Content)을 외면하고 껍데기(Form)만 지적했다.

처음 요청한 것은 "나의 생각"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었다. 하지만 막상 보고 자리에서는 그 '생각'에 대한 논의는 온데간데없고, 색상, 배치, 키워드 같은 형식적인 이야기만 오고 갔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이다. 피드백의 목적을 잊은 대화는 공허할 뿐이다.


2. 의견은 '모호'했고, 지시는 '단순'했다.

"왜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 정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모호한 비판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고 방향을 잃게 만든다. 반면, "색상을 이걸로 바꾸고, 목적이라고 적으시죠" 같은 지시는 너무나 단순했다. 중요한 것은 리더와 생각을 맞추는 의미 있는 대화이지, 단순한 수정 작업 지시가 아니다.


3. 경청이 사라진 회의실, 태도가 메시지가 된다.

나름 첫 보고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미팅 내내 노트북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던 점. 이는 단순한 습관일 수도 있지만, 피드백을 받는 당사자에게는 "당신의 이야기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경청은 리더의 기본 덕목이다. 특히 구성원이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보고하는 자리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맞추며 '당신의 노력과 의견을 존중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태도이다. 귀를 닫은 리더에게 구성원은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4.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뺏는 '빨간펜 선생님'.

팀장은 코칭 질문 대신 직접 파일을 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장의 결과물은 빨리 수정될지 몰라도, 구성원은 리더의 '손발'로 전락하고 만다. "이 부분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은데,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까요?"와 같이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던져줬더라면 어땠을까.


5. 심리적 안전감을 파괴하는 '압박 면접' 같은 분위기.

평소 질문을 잘하던 나조차 그 자리에서는 위축되어 내 의견은 1도 등장하지 못했다. 팀장이 만든 회의실의 공기가 편안하게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견을 내더라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심리적 안전감'이 없는 곳에서 자유로운 소통과 창의성은 피어날 수 없다.

그날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나쁜 리더는 구성원의 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빼앗아 간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힘을 잃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날 내가 마주한 리더십의 민낯이었다.



다짐했다.

다음번엔 질문을 하자. 그리고 그 대답을 들어보자. 그럼 나도 팀장님의 진짜 생각을 알 수 있을 테니까.


판단은 아직 이르다.


그것이 나의 쓰라렸던 첫 미팅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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