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좀먹는 말들
글을 한창 쓸 때는 아주 가까운 가족에게도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은커녕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무언가나 누군가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었으므로 그럴 필요도 없다 생각했다.
책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완성되고 나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넌지시 표현을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결과의 피드백을 여러 곳에서 받았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말을 돌리거나 관심도 없다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계약을 `기획 출간`으로 했기에 쓴 글의 원고비를 받았다는 뿌듯함을 전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포함하여 대부분에 지인들의 모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첫 책의 주된 내용은 “삶의 모든 건 결국 사랑”이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적어나간 회고와 회상의 마음이었지만, 글을 쓸 때의 현실에 모습은 조금 어두운 면이 있었다. 그때의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 갔으며, 하루를 보냄에 있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답답할 것 같은 삶이었지만 보호막처럼 주위를 감싼 고요함의 시간과 글쓰기라는 표현은 정말 많은 생각과 많은 것들이 내게 선물을 주는 것 같았다.
그중에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말`이었다.
누구나 하루를 보냄에 있어 함부로 쉽게 뱉는 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귓속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닌 가슴과 마음에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간 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뿌리를 내려 보이지 않는 아름드리나무를 키울 수도 있다는 뻔한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억도 나지 않은 말들을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했었던 나 자신도 반성하게 되고,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가슴속에 남아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가면서 좋은 말과 표현만 할 수 있을까. 나는 모든 옳은 말들과 좋은 표현이 모두 긍정으로 작용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을 수 있고, 날카로운 비수가 당장은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간 그 진심을 알아줄 거란 믿음도 있을 수 있다. 현명함은 둘째고, 정답도 모르고 해답도 모른다면 침묵과 묵언은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일을 최소한 방지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지랖과 선행으로 오해를 사고 억울함의 굴레에 빠지기보단 침 한번 삼키고 숨 한번 들이켜 가볍게 미소 짓는 것이 그 어떠한 현명함보다 값진 모습일 수 있다. 그렇게 침묵으로 쌓아간 나의 행위는 평온을 가져다준 것 같다.
말을 아껴서 이룬 것들과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는 원하는 만큼 이루어졌다.
말을 삼키며 지우는 행위가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삭히거나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평온을 가져다준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현재는 아끼는 말을 글로 남겨 불특정 다수에게 이로움을 주려하지만 내 모든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지는 않을게 분명하다. 깊어진 생각으로 적어나가는 글귀는 지워지지 않는 활자로 어딘가에 남겨진다는 생각을 하니 사람과 세상에 대한 부정의 마음들이 줄어나간 것 같다.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행하는 말 한마디를 얼마큼 생각하고 걸러서 해야 하는지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가짐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