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은 것이 싫은 게 아니고 나쁜 걸 피하고 싶을 뿐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늘 함께 오는데 우리들은 그것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by 이민혁

내게 있어 평화로운 사무실에서의 백색소음은 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별 볼 일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다. 그날도 변함없는 일상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파일철을 보관하는 창고에서 서류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동료직원분께서 슬그머니 들어오시더니 옆 자리에 털썩 앉으시고 자신의 상황을 말씀하신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약간은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그분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ㅇㅇㅇ씨 저 정말 힘드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말과 함께 숨도 쉬지 않고 당신의 이야기를 내게 쏟아부으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잖이 당황을 하긴 했지만 세상 억울한 일이 가득 찬 그분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니 이야기를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료분은 짧은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의 고달픈 일들을 하소연하듯 내게 내뱉으셨다. 참고로 동료분은 나보다 10살 이상은 많으신 분이다.

올초 1월에 같이 입사를 한 동료분이시지만 연배가 높으셔서 근무 중에 말을 많이 섞은 적은 없다.

다른 분들은 근무 중에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 그렇지만 유독 나는 사무실에서 조용하다.

실은 나는 이분뿐만 아니라 사무실의 다른 분들이랑도 말을 거의 섞지 않는다.

서로 서먹하지 않을 정도로 필요한 대화만 한다.

그래서 나는 유독 말이 없어도 다른 분들과 관계가 소홀하거나 문제가 있지도 않다. 그저 성격상 말수도 없을뿐더러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말하는 것이 그리 편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그저 회사에 출근하면 조용히 내 할 일만 하고 퇴근하는 것이 좋고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큰 리액션 없이 그분의 이야기를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다.

5분 정도(?)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토하듯 뱉어내시곤 내게 말씀하셨다.

"ㅇㅇㅇ님께 말하면 속이 좀 시원해지고 안정이 될 것 같아서 말했어요. 미안해요."

그 말을 듣고 그제야 나도 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네, 편히 말씀하세요. 제가 도움은 못되어 드려도 선생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조금은 울컥하셨는지 눈가가 살짝 핑~돌더니 계속 말을 이어나가셨다.

"ㅇㅇㅇ님께 말하면 다른 곳에 말이 흘러나가지 않을 것 같아서요."

"ㅇㅇㅇ님께 해답을 찾으려 한 건 아니에요. 그저 답답한 마음을 풀 곳이 없어서... 죄송해요."

그러자 나는 뭔가 의무감에 의욕이 흘러나왔는지 그분께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나의 생각과 입장을 조금 말씀드렸다. 대략 10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드린 말씀이지만 그분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해 보였다.

"고마워요 ㅇㅇㅇ님. 창고에 둘이 너무 오래 있으면 팀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먼저 나가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찾던 서류 좀 더 찾고 나갈게요."


내가 봐도 그분의 낯빛은 1~2주 사이에 얼굴이 많이 안돼 보이셨다. 수척해진 얼굴이 몇 날 며칠 이어진듯했고 하루의 시작인 아침 9시인데도 한창 고된 시간인 낯 서너 시 정도로 보였다.

창고에서 마주친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 순 없었다.

더욱이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께 더 깊이 해드릴 말은 없었다.

그저 좋게 생각하시라고, 괜찮을 거라고, 평온하시라고, 그 정도의 위로였다.

그리고 중간에 그분의 감정에 휘말려서, 해도 될까? 한 말을 한 것이 약간은 후회가 됐다.

매일 보지 않는 관계였다면 적극적으로 했을 말이었다. 그러나 말을 한창 하던 중 매일 보는 관계라서 상대가 약간은 꺼림칙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사무실에 출근해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지 않은 게 아닌, 나쁜 것들을 서로 피하고 싶어서예요."

사무실 직원분들과 좋은 것들을 나누고도 싶지만, 불편한 상황은 더욱 만들고 싶지 않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나의 말을 긍정적으로 좋게 받아들여주셨다.


그날 이후로 그분의 얼굴은 점점 나아지셨다. 직장생활의 어려움과 업무가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마음의 짐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평상시보다 좀 더 나은 마음으로 아침의 출근길을 맞이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그분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였다. 오며 가며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간중간에 고맙다는 표현으로 내 어깨를 살짝 토닥여 주시기도 했다. 그분은 내가 보기에 생각보다 많이 애쓰고 계셨다.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계셨다. 도태되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계셨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예스맨으로 살아가고 계신다. 내가 보기엔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반면 나는 `예스맨`의 성향과는 거리가 있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확실치 않는 것은 잘 모른다고 한다. 어설프게 하는 것은 그냥 못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충분히 도와드리지만 먼저 나서서 해드리겠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삶을 적당히 살아온 결과 무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나의 주관적인 모습인 것 같다. 그리고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늘 함께 오는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좋은 것에 한없이 기뻤다가도 서로 불편하거나 나쁜 상황이 오면 어찌할 바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만 놓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좋은 것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성을 잃으면서까지 빠져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열 번 좋다가도 한 번 안 좋으면 평생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게 사람이고 관계이니까.


사회란 게, 삶이란 게, 그분이 정답도 아니고, 내가 정답도 아니다.

그저 모두가 정답인 세상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져야 하는 결말이 꼭 나야 하는 그런 줄다리기 같은 보통의 삶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도 모두가 적당히 좋을 수 있는 그런 현실의 삶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리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해도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함께 좋아해 주거나 기뻐해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keyword
이전 02화말을 아끼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