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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못 이루면 어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걸

끄적끄적

by 공작

꿈을 못 이루면 어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걸



늦은 오후, 집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아이패드 화면에는 깜빡이는 커서가 멈춰 서 있다. 커피는 미지근해졌고, 주방 식탁 위는 어지럽고 차갑다. 나는 식탁에 앉아 한참 동안 한 문장을 고치고 있었다. 문장이란 참 이상해서, 머릿속에 맴돌 때는 분명 반짝였는데 막상 쓰면 무뎌지기 일쑤다. 창밖으로는 성난 듯 비가 오고 창문을 열었다 다시 닫기를 반복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끔은 묻는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이토록 성과 없는 일을 나는 왜 이토록 오래 붙잡고 있는 걸까.

스물세 살의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세상에 많은 직업들이 있었지만,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엄마가 하라고 하는 것이었는지 탐구할 시간도 가지지 않은 채 그냥 그 꿈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들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딱히 닮고 싶은 선생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이상적인 선생님의 존재를 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해 주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진심으로 도와주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진정한 내 꿈은 아니었던 듯 싶다.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글'이 있었다. 공부가 지칠 때마다 글을 썼고, 실패할 때마다 글로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가르치고 싶어서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거라고. 그게 꼭 교단 위일 필요는 없었다는 걸. 그렇게 나는, 처음 꿈꾸던 길을 돌아 나왔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작가 고골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역사학과 교수가 되기를 꿈꿨다. 문학보다는 역사에 더 큰 애정을 품고, 실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교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재능은 글을 쓰면서 문학에서 발휘되었다. 글로 쓰는 문장이 자신의 본질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결국 그는 교단을 떠나 펜을 들었고, 『외투』, 『죽은 혼』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역사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그의 문학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기록하는 하나의 역사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알고서 어쩐지 안도했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실패한 것은 아니며 내가 원하는 직업을 못 가졌어도 정작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꿈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실패라는 말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된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우리는 어릴 적 하나의 꿈을 정답처럼 품는다. 그리고 그 길을 벗어나면 실패라고 여긴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길은 언제나 단정할 수 없고, 삶은 훨씬 유기적이다. 누군가는 먼 길을 돌아 같은 자리에 도착하고, 또 누군가는 예상과 전혀 다른 모양의 꿈을 이루기도 한다.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글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말을 건네고 있다. 교실은 없지만, 이 공간 역시 누군가에겐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꿈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고골이 그랬고, 나도 그렇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지금 그런 길 위에 있을지 모른다.

이제는 생각한다. 처음 그리던 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어쩌면 진짜 삶은, 예상하지 못한 길에서 더 자주 피어난다고. 꿈은 도착지가 아니라 방향일 뿐이고, 그 방향은 시간이 흐르며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바뀐 끝에서, 우리는 종종 더 깊은 진심을 만나게 된다. 고골이 역사학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았듯, 내가 교사가 되지 않았어도 괜찮다. 대신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다. 처음의 꿈을 흘려보낸 당신에게, 나도 이렇게 조용히 말을 건네본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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