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민희 Jan 02. 2023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 식물의 세계

수수비와 알수수 

  수수부꾸미란 떡 이름은 참 수수하다. 요리를 만들고 난 후의 완성품을 보아도 수수부꾸미에는 식물 수수가 보여주는 수수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수수부꾸미가 생소한 MZ세대들에게 단어 뜻을 풀어서 설명하면 ‘수수를 지진 떡’이다. 한식 요리 배워보겠다고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보면서 그중에 내 기억에는 예스러운 것들이 기억에  속에 남는다. 아마 식물 공부하면서 채집하고 수록했던 내용들이 떠올라서 머릿속에 진한 여운의 잔상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수수부꾸미를 보며 생뚱맞게 수수로 만든 빗자루가 떠오른다. 초중고 하교 시간이 끝에 찾아오는 지루한 청소 시간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바닥을 쓸어 봤던 그 빗자루 말이다. 빗자루 끝에 알알이 달려 있는 덜 여문 동그란 열매가 바로 수수다.  

  벼와 수수는 화본과 식물에 속한다. 벼는 알곡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수수는 알곡이 익을수록 올곧게 자란 것이 우리가 먹어야 하는 식물 품종이다. 수수의 알곡이 익어 고개를 숙이는 그 식물에는 독이 있다. 지혜로웠던 선인들은 수수의 성분을 어떻게 알아채셨는지, 빗자루 재료로 고개 숙이며 익어가는 수수로! 인체에 무해한 알수수는 수수부꾸미의 식재료로 활용했다. 알수수는 굵고 곧은 줄기에서 타원형 모형으로 열매가 익을수록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자라는 품종을 말한다. 이 품종도 복원된 것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본래 있었지만 사라졌다가 복원된 품종이다.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는 내가 채집한 내용에 체계를 잡아가며 쓰는 이유는 식물 전문가들은 본래의 우리 고유 품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굳이 이런 글을  "네가 왜 쓰냐고! 전문가에게나 맡겨라"란 말을 들으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어디 책에서 따온 글들이 아니다. 만일 내가 식물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내가 배운 지식 틀에 빠져 다른 세계는 배제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오직 내가 아는 것이 다라고 말이다.  몇 십 년에 걸쳐 자연과 식물 연구한 이영문 스승님의 말씀과 국외 탐방을 다니며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에 자료가 없다면 중국의 자료까지 살펴 한 줄 한 줄 노력과 피, 땀 흘리며 글을 쓴다. 때론 창작의 고통보다 더한 무게감이 내 이성과 감성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래도 쓰는 이유는 삶의 과제라 여기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수동형의 과제가 아니라,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는 이의 눈으로 보는 식물 세계의 고찰"인 것이다.  

  첨단 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인공 개량 품종 우량화, 더 나아가 식물 유전자 인자의 과한 변형까지...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식물 자원을 등한시하고 있다. 말과 글도 우리 것보다 남의 말을 일상화해 사용하고 더 훌륭하게 평가한다. 식물의 세계관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본래 우리 땅에 자생하는 식물보다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식물들에 더 열광한다.

 ‘과연 어떤 것이 참된 것일까.’ 

진실된 역사와 가까이 마주하다 보면 일상에서 접하는 식물의 세계는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것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일까.’

  ‘무지(無知)에 대한 각성(覺醒)일까’... 



이전 05화 봄을 부르는 다섯 장의 노란 잎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