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면 날이 따스해지고, 가을비가 내리면 날이 시원해진다. 사계의 열매가 무르익는 가을이 되면 추어탕 한 그릇이 떠오른다. 몸 약한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끓여준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는 어탕 말이다. 몸이 약한 만큼 비위가 약했던 나는 추어탕 먹기를 꺼렸다. 어탕에서 나는 특유의 비린내 때문이다. 비린내로 탕을 거부하면 그때서야 엄마는 냉동실로 발걸음을 옮기시면 독특한 향이 나는 가루를 탕에 넣어주셨다. 바로 나무의 익은 열매를 말려 껍질만 분리하여 갈아 만든 독특한 향이 나는 초피 가루였다.
초피나무와 산초나무의 열매가 비슷하여 같은 나무로 보기도 하는데 서로 다른 식물이다.
일본에서 초피를 산쇼(山椒, 한국 한자음: 산초)라 불러 헷갈리게 되어 지금까지도 혼용하여 단어를 사용한다.
산초 열매는 약용으로 쓰이는 열매이고, 사람이 식용할 수 있는 나무는 초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초피와 잎으로 고기를 잡은 기록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 초피나무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향신료로 예로부터 활용한 것이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식물 자원을 많이 빼앗긴 우리 강산에 산초는 많아도 초피나무가 흔치 않다. 그나마 따뜻한 지방에는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예로부터 초피나무는 나물로도 많이 먹어 왔다. (초피나무는 여성 질환, 치질, 추위, 더위 타는데, 신경통, 타박상 종기 탈모약으로 쓰고 봄에 자란 어린잎은 생잎을 향신료로 이용, 장아찌 담아 먹었다) 경상도에서는 초피를 제피라고 부른다.
초피나무와 산초나무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같은 나무로 보는데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가시의 위치로 판별할 수 있다. 초피나무는 가시가 마주 보고 나는 반면, 산초나무는 어긋나며 가시가 달린다.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르다. 초피나무는 4~6월에 피고, 산초나무는 가을에 핀다. 초피나무는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며 초피와 혼동하기 쉬운 산초는 약용으로 활용해야 한다. 식용은 먹을거리에 적극 활용해도 되지만, 약용은 아픈 이에게만 처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몸에 좋은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건강한 사람이 몸에 좋은 약성의 식물을 먹으면 독성이 될 수도 있다. )
초피나무의 독특한 생존 방식이 있다. 초피나무는 엉뚱한 곳에 꽃가루가 배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같은 종류의 나무끼리만 꽃가루를 옮겨줄 운반자를 찾는다. 6월 중순 새로 돋아난 초피 잎 여기저기에 연둣빛 알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 파괴로 인해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연둣빛 알에서 애벌레가 얼굴을 내밀고 꾸물꾸물 나온다. 이 애벌레는 자기 알껍데기를 먹어 치우는 것이 첫 식사다. 15일이 지나면 연둣빛 외투로 갈아입은 애벌레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바로 애벌레의 양식이 될 연한 잎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애벌레였을 때 먹고 자란 음식이 평생의 입맛을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3~4일이 지나면 애벌레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번데기가 된 지 20여 일이 지난 후 어느 7월의 아침 번데기의 등이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나비 한 마리가 탄생한다. 바로 호랑나비이다.
연둣빛 애벌레가 호랑나비가 되어서도 초피나무 주위를 멀리 떠나지 않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먹던 초피나무 잎에 자극적인 맛과 향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잎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호랑나비를 키운 초피나무는 그 대가로 자기 품종에 개체만을 찾아다니는 충직한 꽃가루 운반 개체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드는 훼방꾼이 있다.
'사마귀다.'
사마귀는 초피나무에 가면 언제나 맛있는 사냥감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랑나비와 초피나무의 관계를 이미 꿰뚫고 있는 사마귀는 느긋하게 먹이 사냥감을 기다린다. 초피나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 종류의 운반자에게 꽃가루받이를 의존하는 독점 관계에는 이런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