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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희 Oct 22. 2023

호박벌의 한살이

꽃과 벌의 머리싸움 

  어느 계절 보다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한 겨울날, 벌 한 마리가 꽃 품에 안겨 있다. 겨우내에만 피는 번홍화 품이다. 날렵하게 생긴 꿀벌과 다르게 이 벌은 동글동글 귀엽게 생겼다. 어플로 찾아보니 호박벌이란다. 몸집의 크기가 대추 크기만 해서 대추벌로 불린다고 한다. 

  호박벌은 큰 무리를 지으면 산다. 삶의 끝인 죽음의 시기가 다가오면 가족을 떠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곤충이다. 아마 내가 본 호박벌은 가족을 떠나 외로이 밖을 떠돌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번홍화 꽃 속으로 들어온 듯싶었다. 

  그런 속 깊은 사정을 모르고 호박벌에게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엉덩이도 밀어보며 텃세를 부렸던 것이 미안해진다. 다음날 바람도 매섭고 입김을 부니 도넛 여러 개가 만들어지는 추운 날이었다. 호박벌이 아직도 꽃 품에 있을까 했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호박벌은 몸길이가 평균 2.5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져 귀여운 생김새를 갖고 있다. 호박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하루 약 200km 이상 되는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신기한 곤충이다. 작은 체구와 비교하면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니는 셈인데 사실 호박벌은 태생적으로 날 수 없는 신체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몸통은 크고 뚱뚱하고 날개는 작고 가벼워서 날기는커녕 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지만 호박벌은 매일 꿀을 모으기 위해 비행을 한다. 어떻게 그 작고 뚱뚱한 몸으로 기적 같은 비행을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는 걸까.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있는지, 없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을 모르겠다는 일념이 있기에 이뤄낸 것이다. 

  호박벌은 꿀벌과는 다른 방법으로 꽃꿀을 얻어간다. 호박벌은 꽃의 밑동에 주둥이를 박아 구멍을 낸다. 꽃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대신 직접 꿀샘에 주둥이를 박고 꿀을 훔친다. 힘들고 번거로운 수고 대신 도둑질을 택한 영리한 호박벌 앞에 꽃들은 속수무책 당한다. 

'모든 벌이 꽃의 의도대로 따라 주지만은 않는 것이다.'

  꽃과 벌의 머리싸움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꽃가루를 모으는데 누구보다 열심인 벌은 전문적인 솜씨로 꽃가루를 뭉쳐 뒷다리에 매단다. 단백질 덩어리인 꽃가루가 아기벌에게 훌륭한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벌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벌통 입구를 가로막은 좁은 구멍을 빠져나가기 위해 애처로울 만큼 안간힘을 쓴다. 벌이 화분 경단 하나를 만들려면 수십 송이의 꽃을 넘나들며 공을 들여야 한다.  화분 경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가루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벌이 한 종류가 아닌 여러 종류의 꽃을 방문했다는 증거이다. 한데 이렇게 되면 꽃의 수정과 수분의 확률이 떨어진다. 꽃가루는 종류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른데 식물의 최대 관심은 이 꽃가루가 다른 종류의 꽃에 낭비하지 않도록 더 신뢰 있는 운반자를 끌어들이려 한다.   이렇게 힘들게 모은 꿀을 사람에게 거저 내주는 걸 보면 결국 꽃가루의 최종 혜택을 받는 이는 인간이다.  

사람의 식물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어서 본래 식물 유전자를 인공 개량하여 변이종을 만들어 낸다. 고유한 식물종들이 점차 사라지는 개체 수만큼,  벌과 나비도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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